경기 '양주회천 LH' 아파트 154개 기둥 보강철근 '모두 누락'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단지들의 무량판 구조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국토부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국토지주택공사 발주 단지들의 무량판 구조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국토부

지난 4월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 붕괴 원인이었던 철근 누락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다른 아파트에서도 발견됐다. 

국토교통부의 조사 결과 내년 초 입주 예정인 경기 양주회천의 아파트는 설계 과정에서 154개 기둥 전체에 보강철근(전단 보강근)이 누락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아파트 모두 LH가 발주한 것으로 설계, 시공, 감리 등 건설 모든 과정에서 안전 불감증이 나타나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7년 이후 LH가 무량판으로 발주해 시공사를 선정한 공공주택 91개 단지 가운데 15개 단지에서 기둥 주변 보강철근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31일 밝혔다.

◆ '철근 누락' 부실 아파트 어디

국토부가 발표한 부실 아파트는 서울 수서역세권, 경기 남양주별내 등 수도권 8곳과 광주선운, 양산사송 등 지방 7곳이다.

구조 계산이 잘못되거나 설계 과정부터 기둥 주변의 전단 보강근이 누락되고 설계대로 아파트가 시공되지 않는 등 총체적 부실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준공된 아파트는 △파주운정 A34(임대·대보건설) △충남도청이전신도시 RH11(임대·DL건설) △수서역세권 A-3BL(분양·양우종합건설) △수원당수 A3(분양·한라) △오산세교2 A6(임대·동문건설) △남양주별내 A25(분양·삼환기업) △음성금석 A2(임대·이수건설) △공주월송 A4(임대·남영건설) △아산탕정 2-A14(임대·양우종합건설) 등 9개다.

아직 지어지고 있는 아파트는 △양주회천 A15(임대·한신공영) △광주선운2 A2(임대·효성중공업) △양산사송 A-2(분양·에이스건설) △양산사송 A-8BL(임대·대우산업개발) △파주운정3 A23(분양·대보건설) △인천가정2 A-1BL(임대·태평양개발) 등 6개다.

▲ 전국 철근 누락 아파트와 시공사 현황. ⓒ 세이프타임즈
▲ 전국 철근 누락 아파트와 시공사 현황. ⓒ 세이프타임즈

건물의 하중을 견디는 보 없이 기둥으로만 천장을 지지하는 무량판 구조 건물은 공간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지만 설계와 시공을 할 때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양주회천 단지의 경우 전단보강근의 계산 자체가 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파주운정 단지 두 곳과 수서역세권단지 일부 역시 해당 부분에 대한 구조 계산이 빠져 철근이 누락됐다.

양산사송 A8단지는 구조 계산 과정에서 실수로 72곳에 철근이 빠졌다. 인천 가정단지는 철근의 크기가 잘못 입력된 것으로 밝혀졌다.

충남도청과 수서역세권 단지 일부는 도면을 그리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구조 계산은 정확히 이뤄졌지만 상세도면에 전단 보강근 표기가 누락됐다는 것이다.

오산 세교단지는 전단 보강근에 대한 상세도면 자체가 없었다.

음성금석단지와 남양주별내 단지는 현장 노동자들이 도면을 잘못 보고 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층 도면을 보고 시공해 철근이 누락된 것이다.

나머지 아파트 3곳도 시공 단계에서 오류가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

◆ 보상은 어떻게 이뤄지나 … 재시공은 '불가능'

LH는 철근 누락 단지에 대해 보강 공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LH는 해당 단지들의 지하 주차창에 추가 기둥을 시공하거나 이미 세워진 기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보강 공사로 인해 입주가 늦춰진 입주 예정자들이 받아야 할 피해 보상에 대해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입주 예정자들은 지연에 따른 보상금을 LH나 시공사에 요구할 수 있고 계약금과 중도금, 일정 연체 이자율을 바탕으로 보상금이 책정된다.

3개월 넘게 입주가 미뤄지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입주 예정자는 기존에 납부한 분양대금과 이자를 받고 위약금도 청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이미 입주가 끝난 아파트의 경우다. 대부분의 건물 하자는 보강 공사로 마무리하지만 철근 누락과 같은 큰 문제가 발생하면 입주민이 계약을 해지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해당 문제에 대해 입주자들이 LH나 시공사와 합의를 보지 못하면 법정 소송으로 번질 수 있다.

한 입주민은 "철근 누락 문제로 집값이 하락하거나 심리적 불안 등에 대한 피해 부분도 보상을 받고 싶다"며 "법원에서 이를 인정한 사례가 많지 않다고 해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일부 입주민은 불안을 호소하며 재시공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H나 시공사가 먼저 재시공을 약속하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게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보강공사 쉬쉬' … '더 이상 못 믿겠다' 입주민들 불만

철근 누락으로 보강 공사가 진행중인 경기 파주 운정 A34단지 지하 주차장에 보강 공사 공지 대신 '도색 작업' 안내가 붙어 입주민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보강 공사 부분을 파란색 천으로 가린 뒤 페인트 도색 보수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니 페인트가 묻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입주가 시작된 해당 단지는 지하주차장 331개 기둥 가운데 12개 기둥의 전단 보강근이 누락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 입주민은 "1년 동안 철근이 빠진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며 "보강 공사마저 입주민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진행하는데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주를 앞둔 파주운정 A23 단지와 양산사송 A2 단지 입주 예정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아파트 입주 예정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철근이 누락된 아파트에 입주하려니 불안하다"며 "어렵게 청약에 당첨됐지만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입주가 끝난 단지의 한 입주민은 "철근 누락 부실 아파트로 전국에 공개됐는데 나중에 집을 팔 때 가치가 하락해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한국주택토지공사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 가운데 15곳에서 전단 보강근이 빠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LH
▲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아파트 단지 가운데 15곳에서 전단 보강근이 빠졌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 LH

◆ 윤석열 대통령 "부실 아파트 전수조사 하라"

윤석열 대통령은 "철근 누락과 관련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부실 공사 상황을 전수 조사하고 안전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부실 아파트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에게 전화로 이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들이 조사 대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걱정하는 부분이 있다면 전수 조사 대상에 모두 포함시킬 예정"이라며 후속 대책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김정재 의원(국민의힘·경북포항)은 "전수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건설 분야의 관련 카르텔이 없었는지 국정 감사에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 사상 최대 대규모 아파트 점검

부실 아파트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국토부는 민간회사에서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도 안전 점검 대상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이르면 8월 말 국토부는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점검 결과를 발표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안전진단 전문기관에 의뢰해 1차 점검을 마치고 철근 누락 등 중대한 하자가 발견되면 후속 정밀 진단을 통해 보강 공사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점검과 하자 보수 등에 대한 비용은 해당 건설사들이 일부 부담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입주가 완료된 단지의 경우 하자보수 예치금 등 자체적으로 비용을 들여 공사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입주민들의 동의도 필요하다.

부동산 관계자는 "점검은 필요한 절차지만 만약 철근 누락 사실이 밝혀지면 집값이 하락할 것을 염려해 입주민들이 소극적으로 대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무량판 구조 문제있나

무량판 공법은 건물 바닥을 지지하는 보 없이 기둥을 바로 시공하는 공법이다.

적절한 계산으로 정확히 시공되지 않으면 기둥과 맞닿은 바닥이 침하하면서 구멍이 뚫리는 '펀칭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1995년 무너진 삼풍백화점 옥상도 붕괴 직전 이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펀칭 현상을 막으려면 천장에 배근된 철근들을 서로 엮어서 건물 하중을 버티게 하는 전단 보강근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된 아파트들 대부분은 이 전단 보강근이 빠져 부실 시공이 된 것이다.

건축 전문가들은 무량판 공법 자체엔 문제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보를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자재비를 절감할 수 있고 공간 활용도도 높으며 공사 기간 단축 등 장점이 많다는 것이다.

LH가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설계한 이유도 이같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40년 경력의 한 시공 전문가는 "무량판은 제대로 짓기만 하면 다른 공법들에 비해 층간소음 감소 등 오히려 장점이 더 많은 공법"이라며 "임대주택 공급이 확대된 시기와 맞물려 현장 관리 감독이 소홀해 지면서 발생한 문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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