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 '친일행위' 문구 삭제 명백한 '역사왜곡'
독일 '나치 찬양' 강력 처벌 국가 정체성 바로 세워야

▲ 2018년 홀로코스트 부정혐의로 처벌된 독일여성 우르줄라 하퍼베크. ⓒ 연합뉴스
▲ 2018년 홀로코스트 부정혐의로 처벌된 독일여성 우르줄라 하퍼베크. ⓒ 연합뉴스

2018년 우르즐라 하퍼베크라는 독일 여성이 노르트라인베스팔렌 주 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929년생이니 당시 나이가 89세인 여성을 징역형에 처한 것이다. 이 여성의 죄목은 '국민선동혐의'.

독일의 형법 제130조 3항은 나치를 찬양하거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이나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이다. '나치 할머니'라는 별명이 붙은 극우 성향의 우르즐라는 극우 행사에 참여하면서 여러 차례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온 인사다.

이 여성은 자신을 처벌한 독일 형법 130조가 국민 기본권인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독일 헌법재판소는 명백한 거짓 사실의 확산은 언론 자유에 해당 되지 않는다며 독일 법원의 손을 들어줬다. 독일 헌재가 내세운 근거는 역사적 사실의 부정이나 왜곡은 '공적인 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 130조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지만 독일은 90세인 고령의 여성을 징역형에 처할 정도로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역사 왜곡을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보면서 몇 년 전 국회에서 벌어진 참담한 광경이 떠오른다. 국회의원 몇 사람이 5·18이 북한군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극우 인사를 그것도 국회에 초청해 버젓이 강연회를 열었던 일이다.

민주당의 주도로 5·18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이런 참담한 주장과 상황은 재현되지 않고 있지만, 극우 인사들의 역사 왜곡 행위는 그치지 않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반역사적 행위가 국가기관 그것도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들을 관리하는 국가보훈부에서 발생했다.

▲ 지난 5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에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등 내빈들이 제막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5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에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종섭 국방부 장관,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등 내빈들이 제막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보훈부는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검색란에 기재된 백선엽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했다. 백 장군은 만주의 반일 저항 세력 토벌 부대로 악명 높았던 일제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한 전력이 있다.

보훈부가 문구 삭제 결정을 내린 근거는 국립묘지법에 위반되고, 사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훼손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백 장군의 친일 행위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내세우고 있다.

▲ 박민식 보훈부장관이 지난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대장 동상 제막식'에서 기념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박민식 보훈부장관이 지난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대장 동상 제막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민식 보훈부 장관은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객관적 자료는 없다"며, 당시 위원회의 결정이 정치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간도특설대 근무는 백선엽 스스로 인정한 사실이다. 또한 1993년 일본에서 발간된 책 '대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에서 독립군과 직접 전투를 한 사실은 없지만 "특설대가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본인이 인정한 사실을 보훈부가 나서 부정하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훈부의 주장대로 독립군과 싸운 사실이 없다고 해서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논리다. '간도특설대'는 일제에 대항해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반일 저항세력을 토벌하기 위해 구성한 준군사조직이다. 민간인 살해 등 여러 가지 잔혹 행위를 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일제에 대항하는 세력을 토벌하는 것'이 '친일 행위'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행위를 '친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독립군과 직접 싸우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간도특설대'의 친일 행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

▲ 지난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이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5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 앞에서 민족문제연구소 구미지회 회원들이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백선엽 장군의 이후 행적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것이 분명하고, 초창기 우리 국군의 위상을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일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법원의 일본 징용피해자 판결을 스스로 부정하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행보가 과연 우리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두렵다.

90살이 넘은 여성을 감옥에 넣을 정도로 '나치'의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는 독일과 전범으로 가득 찬 야스쿠니 신사를 각료들이 참배하는 일본은 과연 대한민국에 어떤 교훈을 던지고 있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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