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문 앞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조화들이 쌓여있다. ⓒ 신서호 기자
▲ 서울 서초구 서이초 교문 앞 고인이 된 교사를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조화들이 쌓여있다. ⓒ 신서호 기자

지난 20일 부임한 지 2년차, 23살의 젊은 여선생님이 세상을 등졌다. 그것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했던 교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고통스러웠으면 그랬을까 안타깝다.

원인은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제기일 가능성이 크다. 소위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는 조폭성 발언도 있었다 한다. 많이 배웠다는 변호사 학부모의 전화내용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에는 한 여선생님이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입원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편 말을 빌리면 아내는 폭행에 의한 통증보다도 정신적인 공황에 더 시달렸다고 했다.

2000년대 이전 만해도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무척이나 어려운 존재였다. 학부모들에게는 언제나 빈객이었고, 지역에서도 식자(識者)로 존중 받았다. 직업으로도 어느 분야 못지않게 명망받는 위치였다.

특히 초등학교 여선생님은 최고의 직업 중 하나로 꼽혔다. 아이들에게는 화장실도 안가는 천사같은 분이었고 어른들에게는 1등 신부감이었다. 그러나 갈수록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선생님의 권위도 속절없이 추락했다.

▲ 김춘만 논설위원
▲ 김춘만 논설위원

2010년 경기도부터 시행된 학생인권조례는 우리나라 교육역사에 중대한 전기를 마련했다. 학교에서 학생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체벌과 강압에 의해 학생들을 통제한 부분이 적지 않음을 지적한 것이다. 학생들의 당연한 권리보장이고 교육지침이 돼야 한다. 그러나 이 후 교권은 갈수록 떨어지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사소한 체벌에도 학부모의 항의는 거세지고 학생들마저 대놓고 교사를 경시한다. 급기야는 덩치가 커진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여선생님들은 성적 희롱을 당하기도 한다. 학생인권과 비례해 교사의 권리는 처참하게 망가지고 있다.

물론 체벌이 정당화될 수 없다. 교사가 예전처럼 학생들에 '군림'하는 것도 반시대적 사고다. 그러나 교육의 목적은 한결같다. 교사는 학생을 존중하고, 학생은 교사를 존경해야 한다. 그 속에서 배움이 이루어지고 미래가 다듬어져야 한다.

예로부터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했다. 물론 사자성어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다. 수직적인 권위는 요즘 세대에게는 반감만 갖게 한다. 소위 꼰대 논리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하지 말아야 것이 있다. 그것은 서로가 인격적인 존중으로 맺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정립하는 데는 학부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 교육의 절반이상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부모부터 선생님을 존중하면 아이들도 학교에서 그대로 따라한다.

요즘 학교는 삶에 대한 진지한 배움보다는 입시교육에 치우쳐 있다. 그만큼 교사나 학생 모두 민감해져 있다입시성적이 학교와 교사평가를 좌우하는 시대적 모순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 학부모들까지 과열되면 우리 교육은 정말로 망가지고 만다.

이번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건도 학부모들이 자중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런 비극이 교육현장에서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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