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장들 "현장 출동 하라" 근무수칙 변경공문 시달
일선 직원 반발하자 '무능한 센터장' 글에 '부글부글'
간부후보생 폐지 주장 국민청원 비화 갈등격화 양상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119안전센터장이 펌프차에 선탑해 현장에 출동하라고 공문을 시달했다. ⓒ 서울소방재난본부 내부 게시판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119안전센터장이 펌프차에 선탑해 현장에 출동하라고 공문을 시달했다. ⓒ 서울소방재난본부 내부 게시판

공문 한장이 울고 싶은 서울시 현장 소방관들의 뺨을 때렸다.

이 공문을 시달한 서울소방재난본부의 한 간부가 일선 119안전센터장에게 모멸감을 주는 막말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119안전센터장은 옛 소방파출소장, 경찰의 지구대장과 비슷한 직위로 보통 소방경의 계급이 맡고 있다.

파문은 서울소방본부가 서울시장 명의로 지난달 25일 일선 소방서에 <현장중심 지휘체계 강화를 위한 현장대응단장 및 119안전센터장 현장출동 기준 알림>이라는 공문을 시달하면서 촉발됐다.

<세이프타임즈(www.safetimes.co.kr)>가 공문 한장으로 촉발된 서울 소방공무원의 심각한 갈등을 엿볼 수 있는 330여개에 달하는 내부 게시판의 내용을 단독 입수했다.

이 공문은 "119안전센터장은 일과 근무 중 모든 현장 출동으로 현장지휘관(선착대장) 또는 단위 지휘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라"고 적시했다. 펌프차 출동 지령이 떨어지면 119안전센터장은 펌프차에 선탑, 현장에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공문이 시달되자 일선 소방관들은 "현실을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문제는 이 문서를 생산한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의 현장대응단장 A씨(소방정)가 해명성 글을 올리면서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됐다. 소방정은 소방서장 계급에 해당한다.

▶A씨가 실명으로 내부게시판에 올린 글 전문◀

지금 뉴스 지면을 달구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글로벌그룹으로 성장시킨 방시혁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학교 학위 수여식 축사에서 한 말입니다.

"적당히 일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타협없이 하루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달려왔다"고 밝혔다. 또 "음악산업이 처한 상황이 상식적이지 않아 분노했고 불행했다"면서 "산업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와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내고, 싸워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센터장님들이 현재 전체 출동중 70%를 출동하고 있습니다. 출장건수는 월 평균 14회입니다. 아무 일 없이 퇴직만 잘하면 된다는 일부 센터장님의 '무사안일'에 분노합니다.

센터 모든 대원들의 리더이므로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센터장님께서 선탑자로 출동을 안해도 된다고 의견을 제시하는 비상식적인 생각에 분노하고 불행해 하고 있습니다.

본부 현장대응단에서는 앞으로 관련 법령과 규정에 따라 부서와의 협조를 얻어 현장활동을 엄정하게 모니터링하여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 모두가 정당한 평가와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한 간부가 119안전센터장이 펌프차에 선탑해 현장에 출동하라고 지시하는 공문을 시달한 뒤 해명성 글. ⓒ 서울소방재난본부 내부 게시판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한 간부가 119안전센터장이 펌프차에 선탑해 현장에 출동하라고 지시하는 공문을 시달한 뒤 해명성 글. ⓒ 서울소방재난본부 내부 게시판

A씨가 서울소방본부 내부 게시판에 이같은 해명성 글을 올리자 일선 소방관들은 "현장을 모르는 소방간부후보생"이라며 성토하는 장으로 순식간에 비화됐다.

이에 한 소방관은 "실명으로 글을 남기면 댓글도 실명으로 등록되는데 댓글은 남기지 말라는 뜻이냐"며 "의사소통없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의견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는 소통이 시급하다"고 일침을 놨다. 13일까지 댓글이 330여개나 쏟아 졌다.

B소방관은 "센터장으로 있으신 분들은 모두가 알다시피 퇴직을 앞두신 선배들이 대부분"이라며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센터장님들을 싸잡아 무사안일, 근무태만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출동관계를 떠나 센터장님들에게 사과하라. 센터장들 중에서는 단장님보다 훨씬 소방에 오래 몸담고 조직에 희생한 분들이 많이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C소방관은 "(서울소방재난)본부 현장대응단장, 팀장, 팀원 수준이 상식 이하"라며 "무조건 현장 출동을 지시할 것이 아니라, 센터장의 업무를 상세히 분석해 근무수칙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냐"고 비판에 가세했다.

D소방관은 "본부 현장대응단은 일선 현장을 서포트하는 부서가 아닌 관련 규정에 따라 엄정하게 대원들을 모니터링하는 감시부서였다"고 비꼬았다.

현장 소방관들은 "서울소방 역사상 출동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을 달랑 문서 1장으로 내려 보냈다"며 비판의 각을 세웠다.

현장대응단장의 '막말파문'은 소방간부후보생 출신과 일반직과의 대립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소방간부후보생은 경찰의 경위에 해당은 '소방위'로 임용된다.

F소방관은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은 너무 이기적이다. 여자 간부생을 채용해 놓고 일선소방서 현장대응단 서무주임을 1년쯤 하다가 본부 지원근무로 발령낸 뒤 3년만에 소방경으로 승진을 시켜주고 있다"며 "소방위로 10년 이상 근무한 뒤 소방경으로 근속승진해도 119안전센터장이나 팀장도 못해보고 관창수와 운전수만 하다가 퇴직한다"며 현실을 한탄했다.

G소방관은 "산불훈련을 하면서 나이 50이 넘은 고참들은 수관 한 두본씩 가져 가지만 30대 중반 정도인 내근 팀장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경치 구경을 하면서 걸어간다"며 "대한민국은 아직도 신분사회냐"고 소방간부후보 출신의 행태를 고발했다.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119안전센터장이 펌프차에 선탑해 현장에 출동하라고 지시하는 공문을 시달후 내부 게시판에 비판의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서울소방재난본부 내부 게시판
▲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119안전센터장이 펌프차에 선탑해 현장에 출동하라고 지시하는 공문을 시달후 내부 게시판에 비판의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 서울소방재난본부 내부 게시판

소방간부후보생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선 소방관들은 "현장에서 불도 한번 제대로 꺼 보지 않은 소방간부후보생 출신이 본부 과장을 비롯해 24곳의 소방서장 대부분을 독식하고 있다"며 "소방간부후보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H소방관은 "신규 임용 직원이나 간부 입직 직원들이나 학력 차이도 크지 않다. 지금같은 고학력 시대에 왜 소방간부후보생 제도를 유지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에 소방간부 후보 폐지 국민청원을 내야 한다는 의견도 속속 올라 오고 있다.

I소방관은 "소송비용 모금을 통해 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은 직원들을 겁박한 모욕·공갈죄에 해당돼 당연히 처벌 대상"이라고 격분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A씨는 지난 28일 게시판을 통해 "119안전센터장 현장 출동건과 관련해 원칙을 강조하고 의욕이 앞서다 보니 직원 여러분을 불편하게 한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며 "적절하지 못한 비유와 강한 어조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께서는 혜량해 달라"는 짤막한 글을 올렸다.

사과성 글을 올렸지만 서울소방 내부 갈등은 더 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수많은 댓글이 속속 삭제되거나, 옹호성 댓글로 교체되면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서울소방본부가 댓글을 올린 직원들에게 글을 내리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모 소방관은 "댓글을 달았는데 동료 소방관으로부터 앞으로 승진에 좋지 않을 수 있다"며 "글을 내리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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