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타임즈 현장기술인 인터뷰
지자체 꼼꼼히 안따지는 점 '악용'

▲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사장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 11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아파트 전수조사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한준 사장이 사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로 입주민들은 물론 시민들도 건축물 부실시공에 대해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부실 시공을 감독하는 감리·시공에서 공정·안전·환경관리를 비롯해 기술지도를 하는 감리가 부실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세이프타임즈가 11일 건설현장에 몸 담고 있는 복수의 감리자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민간 다중이용건축물 실태를 살펴봤다.

우리나라 감리제도는 △건설기술진흥법(건진법)에 의한 건설사업관리 △주택법에 의한 감리 △건축법에 의한 감리로 구분된다.

건진법에 의한 감리는 주로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관급공사에 적용된다. 대부분 프로젝트를 관리·감독하는 감독관이 따로 있어 법정 기준에 따라 감리자를 선정하고 상주 또는 비상주로 감리원을 배치해 운영되고 있다.

건진법에 의한 감리업무는 대부분 공공시설물이기에 각종 점검·감사에 대비해 업무를 하기 때문에 타 법령에 의한 감리보다 더 많은 인원이 투입되고 업무강도도 높은 편이다. 그에 따른 감리원의 보수(시장가)도 높게 책정되고 있다.

▲ 국민의힘 '아파트 무량판 부실공사 진상규명 및 국민안전 태스크포스' 소속 의원들이 경기 양주 회천 A15 블록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철근 누락 관련 보강 공사 현장을 점검하며 이한준 LH 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LH
▲ 국민의힘 '아파트 무량판 부실공사 진상규명 및 국민안전 태스크포스' 소속 의원들이 경기 양주 회천 A15 블록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철근 누락 관련 보강 공사 현장을 점검하며 이한준 LH 사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 LH

주택법에 의한 감리는 일정 규모(300세대) 이상의 아파트(공동주택) 건설공사에 적용된다. 사업계획승인권자(자치단체장)가 모집공고를 낸 뒤 PQ(Pre-Qualification)라는 사전 적격심사 제도를 거쳐 감리자를 지정하고 감리원을 배치해 운영되고 있다.

PQ제도는 아파트 세대 규모에 따라 감리자 지정신청을 한 감리회사를 대상으로 사업수행능력(회사, 감리원)과 입찰가격을 점수화해 감리자를 선정한다.

주택법에 의한 감리업무는 건축물의 용도가 아파트로 한정돼 있어 비교적 규모는 크지만 업무의 반복성이 높아 타 법령에 의한 감리업무보다 수월한 편이며 감리원의 보수도 다소 적게 책정되는 실정이다.

건축법에 의한 감리는 건축법에 따라 건축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축공사에 적용된다. 일부 소규모 공동주택(주택법을 적용 받지 않는 공동주택)은 건축허가권자(지자체장)가 관할 등록 건축사중 감리자 명부에서 무작위로 선정 지정한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양주회천 A15 아파트 주차장에서 보강공사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경기도 양주시 덕계동 양주회천 A15 아파트 주차장에서 보강공사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나머지 용도의 건축물은 건축주(민간 발주자)가 용도와 규모에 따라 비상주감리, 상주감리, 책임상주감리로 구분해 감리용역회사를 선정하고 감리원을 배치해 운영되고 있다.

이번에 이슈가 되고 있는 LH 아파트 감리는 세 가지 법령 가운데 건진법과 주택법을 동시에 적용 받는 관급공사 감리에 해당된다.

관급공사 감리는 그나마 감리자 선정방식과 감리원 배치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법과 기준으로 제도화돼 있다. 감독기관, 지자체 담당부서, 입찰참여자 등 소위 '보는 눈'이 많아서 위법을 저지르기가 쉽지 않은 구조로 되어 있다.

반면에 건축주가 민간 발주자인 건축법에 의한 감리, 특히 어느 정도 규모가 크고 사용자의 안전이 요구되는 다중이용 건축물은 감리자 선정 방식과 감리원 배치 기준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완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다중이용 건축물'이란 불특정한 다수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건축물이다. 바닥면적 합계가 5000㎡ 이상인 문화 및 집회시설, 종교시설, 판매시설, 운수시설 중 여객용 시설, 의료시설 중 종합병원, 숙박시설 중 관광숙박시설과 용도에 상관없이 16층 이상인 건축물을 말한다.

건축법시행령에서도 다중이용 건축물의 중요성이 요구돼 2014년부터 공사감리자를 지정하는 경우 감리원의 배치기준 및 감리대가는 건진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르도록 되어있다.

▲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LH 아파트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 기둥 일부에 철근이 빠진 것으로 확인된 경기도 오산시의 한 LH 아파트에서 보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건설기술인 A씨는 "민간공사 다중이용 건축물 감리용역을 수행하는 감리업체 열의 아홉은 건진법 감리원 배치기준을 무시하고 일반 상주감리 배치기준(건진법 배치기준의 50% 미만)으로 지자체에 감리착수 신고하고 감리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민간 발주자에 저가로 용역계약을 체결한 감리업체가 해당 법령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지자체 담당자들 대부분 착수신고서류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감리배치 인원을 축소시켜 사업이윤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다.

A씨는 "감리 월급이 박봉이어도 건축물 사용자의 안전을 담보 받아 현장에서 법과 기준을 따지고 기술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감리업무를 하고 있지만, 감리회사의 이러한 위법행위로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자괴감마저 든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LH 아파트 철근누락 사태로 인하여 정부나 각 지자체에서는 해당 관급공사 참여업체들만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간공사 다중이용 건축물 참여 업체들도 하루 빨리 조사해 바로잡아 나가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지적을 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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