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연어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그동안 자신이 마음껏 뛰놀며 생활했던 바다에서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와 짝짓기를 마치고 죽습니다. 이때 강으로 올라와 수정한 알이 부화해 이듬해가 되면 다시 새끼 연어가 돼 바다로 나갑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살다가 3~5년이 지나 어른이 되면, 다시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옵니다.

연어가 주로 사는 삶의 터전은 바다인데, 바다에서 지내다가도 그때가 되면 하천으로 돌아옵니다. 하천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많이 죽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서 후손을 남기는 귀소본능(歸巢本能)을 보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습니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을 뜻하는데, 동양에서는 이걸 인(仁)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고향을 그리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데, 이게 사람의 도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사대부들이 쓴 유배가사에는 자신들의 억울함에 대한 호소뿐 아니라, 고향이나 고향으로 대변되는 부모와 자식들을 생각하는 표현이 여럿 있습니다.

북향민을 만나면서 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21세기는 세계화와 지구촌 시대를 논하는 시기인지라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국적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적을 바꾼다고 해도 고향까지 지울 수는 없습니다. 마음에서 지울 수 없는 고향이기에, 마음이 향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북향민에게 슬픈 현실만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향수의 바탕은 그리움인데, 고향은 단지 오랜 세월을 혈연으로 뭉친, 또는 내가 태어난 곳을 그리워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향을 떠날 수는 있지만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건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고, 부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씨(姓氏)를 바꾸고 부모를 바꾸는 일입니다. 북향민을 가르치면서도 이들의 마음에 숨어 있는 북한에 대한 애증에서 이런 걸 봤습니다.

그렇다면 연어나 여우처럼 기독교인이 머리를 둘 곳은 어디일까요. 이렇게 물으면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기독교인은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한 바울의 말씀을 토대로(빌립보서 3:20),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만 기독교인의 시민권이 있고, 이 땅에는 없을까요. 기독교인은 부활로 향하는 성화의 과정에 놓인 존재고, 삶을 시작한 뿌리도 해 아래 세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도 삶의 뿌리인 이 땅의 시민권을 어떻게 쓸 것인지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라'는 헬라어로 '바실레이아'인데, 이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전 영역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모든 게 그 나라에 포함되기에, 이 땅에 대한 간절한 기도도 성령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기독교인이 이 땅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에 포함됩니다. 땅에서의 한계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만, 우리가 걷는 길로 인해 이 땅이 더 아름다운 끝 날을 맞이하기를 기대하는 게 기독교인의 책무입니다.

이사한 후 밤이나 새벽에 별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서울에서는 육안으로 보기 힘들었던 별들을 이곳에서는 망원경도 없이 쉽게 봅니다. 덕분에 별을 보고 노래했던 윤동주의 시를 되뇌고 있습니다. 그의 시처럼 우리 몸의 뿌리인 이 땅이 삼위일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이 되기를, 저 끝날까지 끊임없이 새로워지기를 기도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흙에 대한 염려가 예전과 달리 가슴에 파고듭니다. 또 흙의 아픔을 통해 농촌의 현실을 봅니다. 제가 참으로 아둔해 농촌이 도시의 하부가 아니라 뿌리란 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칼럼을 통해 부탁드립니다. 도시의 쓰레기를 뿌리인 농촌에 몰래 버리고 가는 매몰된 양심을 과감하게 버려 주십시오. 그건 절대 귀소본능이나 수구초심이 아닙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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