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가 만든 용산 군용지 지도. 용산구 제공

미군이 6·25 전쟁 참전을 계기로 용산에 자리 잡기 이전에 일제가 군 사령부 등을 만들면서 작성한 문건이 111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서울 용산구는 1906년 일본군이 용산에 군기지를 조성하기에 앞서 작성한 61쪽 분량의 문건을 13일 공개했다.

문건은 용산문화원에서 지역사를 연구하는 김천수(41) 씨가 '아시아역사 자료센터'에서 수십만 건의 문서를 조회한 끝에 찾아냈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가 공개로 설정해둔 문건이었다.

문건에는 일제가 군용지를 수용하면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숫자가 담겨 있다. 300만평에 이르는 군용지 면적과 경계선이 표시된 '한국 용산 군용 수용지 명세도(상세 지도)'도 실려 있다.

지도에는 대촌ㆍ단내촌ㆍ신촌 등 용산에 있던 옛 둔지미 마을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가 상세히 나와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용산구는 설명했다.

둔지미 마을 주민들의 집단 저항으로 일본군 기지 규모는 당초 계획했던 300만평에서 118만평으로 줄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일본 헌병대에 체포됐다.

지도를 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에 대한 강제철거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길도 그려져 있다. 우리 선조가 수백 년간 이용했던 길이다. 도성을 빠져나온 조선통신사도 이 길을 통과해 일본으로 향했다.

김천수씨는 "용산은 외국군 주둔의 역사로 점철됐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기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용산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으며 한이 담긴 장소"라며 "기지를 조성할 때 파헤쳐진 무덤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말했다.

용산구는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길을 복원하는 등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 이번 문건에서 드러난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길 기대하고 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국가 주도로 진행되는 용산공원 조성사업에는 역사성과 장소에 대한 진지한 고민ㆍ연구가 부족하다"며 "용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 있는 역사를 고려해 공원 조성 과정에서 구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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