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은 신자유주의자, 지지 선언까지는 못해"···'르펜 반대' 구호만

르펜에 반대하는 프랑스 렌의 노동절 집회 참가자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가 엿새 앞으로 다가온 1일(현지시간) 노동절을 맞은 대표 노동단체들의 반(反)극우연대가 분열상을 노출했다.

2002년 대선에서 장마리 르펜이 결선에 진출했을 때 130만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일치된 목소리로 중도우파 시라크를 지지한 것과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는 극우정당 후보인 마린 르펜(48ㆍ국민전선)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곳곳에 등장했다.

그러나 중도신당의 에마뉘엘 마크롱(39·앙마르슈)에게 결선에서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주장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파리 집회에선 두 후보 모두에게 반대한다는 구호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프랑스 최대 노동조합단체 5곳 중 르펜에 맞서 마크롱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곳은 민주노동동맹(CFDT)와 전국자율노조연맹(UNSA) 뿐이었다.

파리 19구에 모인 CFDT-UNSA 공동 노동절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국민전선(FN)의 반동적이고 국수적인 주장에 맞서 마크롱에게 전략적 투표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네사 제레브 UNSA 사무총장은 "서로의 견해차는 잠시 접고 FN에 저항해 마크롱에게 표를 몰아줘야 한다. 필요하다면 다시 거리로 나오자. 마크롱에게 표를 주는 것이 그에게 백지수표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뇌물먹은 악당'이라고 적힌 마크롱 가면 쓰고 행진하는 노동절 집회 참가자

프랑스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총동맹(CGT)을 비롯해 노동자의 힘(FO) 등 좌파성향이 강한 나머지 세 곳은 극우파인 르펜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마크롱에 대한 공개지지 선언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들은 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과으로 노동유연화를 추진해온 마크롱이 지나치게 기업의 편에 서 있다면서 그가 집권하면 노동자의 권익이 줄고 기업의 자유가 커지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인종차별과 국수주의를 내세운 르펜과, 친(親)기업 후보 마크롱을 모두 배격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전선' 구축 주장도 제기됐다.

그러나 CGT의 필리프 마르티네즈 위원장은 "마크롱과 르펜은 절대 같지 않다. 국민전선은 인종주의, 외국인혐오, 여성차별, 반(反)노동자 정당이다. 그런 접근법에는 깊이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노동단체들이 대선 결선에서 누구를 지지할지를 놓고 통일된 목소리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은 2002년 대선 때와 극명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르펜의 아버지로 국민전선을 창당한 장마리 르펜이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후보(당시 총리)를 꺾고 결선에 오르는 대이변을 연출하자, 대표노조들은 일제히 중도우파 자크 시라크 지지를 선언하며 결집했다.

제반 정치세력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극우의 집권을 막자"면서 구축한 이른바 '공화국 연대'로 인해 시라크는 80%가 넘는 압도적인 득표로 장마리 르펜을 눌렀다.

그러나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진행된 노동절 집회는 규모 면에서도 2002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2002년 노동절에는 파리에서만 40만명, 전국에서 130만 명이 노동절 집회에 가세해 반(反) 르펜의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절뿐 아니라 1차투표와 결선투표 사이 2주간 전국 곳곳에서 매일같이 집회가 이어져 시라크에게 표를 주자는 주장이 결집했고, 이는 시라크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날 집회는 15년 전과 비교해 규모와 열기 면에서 크게 못 미친다고 르몽드 등 프랑스 언론들은 전했다.

르펜 측은 이처럼 노동자 단체들이 마크롱에 대한 공개지지를 꺼리는 것을 역이용하고 있다. 그는 마크롱을 '노동자의 적'으로 규정하고 야만적인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폐해를 극복할 후보는 자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르펜은 이날도 파리 외곽 빌펭트 유세에서 "마크롱은 찰거머리처럼 권력에 집착하는 또 다른 프랑수아 올랑드일 뿐"이라고 공격했다. 특히 그는 마크롱을 '금융계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꼭두각시', '캐비어 좌파', '올랑드의 애완견', '프랑스의 힐러리 클린턴' 등 다양한 용어를 써가며 맹공격했다.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88)도 이날 파리 시내 잔다르크 동상 쪽의 국민전선 지지자 집회에 참석해 "딸이 잔다르크는 아니지만 같은 미션을 갖고 프랑스를 선택했다"면서 마크롱에 대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지만 경제를 폭발시킨 그들(현 정부)과 같은 부류"라고 공격했다.

마크롱은 1995년 국민전선의 노동절 집회에서 스킨헤드족들에게 떠밀려 센강에서 빠져 숨진 모로코 청년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해 르펜의 극우·인종주의 이력을 집중 부각했다.

그는 르펜이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반(反)유대주의와 거리를 두려는 듯이 보이지만 "뿌리는 그곳(반유대주의)에 있으며 그 전통은 여전히 살아있다"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르펜의 공약과 이념들에 대항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는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됐지만, 일부 후드티와 마스크를 쓴 시위대가 경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폭력양상으로 치달아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다.

대선 결선 투표를 6일 앞둔 프랑스의 파리에서 노동절인 1일(현지시간) 반극우 집회가 열렸다. 경찰과 대치 상황이 벌어지면서 최루탄이 등장했고 한 집회 참가자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발로 걷어차고 있다. 7일 치르는 대선 결선 투표에서는 중도신당 에마뉘엘 마크롱과 극우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맞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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