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9> 소방공무원 인권상황 실태조사

얼마 전 한 소방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소방에 열정을 가진 후배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자신의 행복과 보다 더 보람된 일을 찾기 위해서 사직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119 구급대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그는 술에 취한 사람들과 비상식적인 사람들로부터 끊임없는 폭언과 욕설, 그리고 폭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런 억울함은 분노조절장애로 이어졌고, 심리상담 등 주위의 도움도 적극적으로 받아보았지만 결국 참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해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땀 흘려 수고하던 한 소방관을 과연 누가 그만두게 만들었을까.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관한 270여 페이지 분량의 연구용역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인권 및 소외계층 건강 전문가, 작업장 안전 전문가, 그리고 법학을 전공한 노동법 전문가 등이 모여 다양한 학제적 접근을 통해 소방관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고 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한 보고서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재난은 그 유형이 다양하며, 규모는 대형화되고 있고, 내용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거기에 구조와 구급업무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각종 생활안전사고 등을 포함해 조금이라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소방관을 찾을 정도로 국민의 기대치가 높아진 상태다. 그런 이유로 최근 한 조사에서 실시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직업 1위에 소방관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겉으로 알려진 높은 신뢰도와는 달리 이번 조사보고서는 소방관의 노동 보건안전에 관한 인권실태가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평생 한 번 목격할만한 사고현장을 매일같이 누비는 소방관들은 만성두통,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 모든 건강문제에서 높은 유병률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이미 퇴직한 선배 소방관들의 평균 사망 연령이 59.8세라는 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국민의 안전을 위한 업무수행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도 소방서 평가를 우려해 자비로 치료를 받는다거나, 최근 벌집제거 중에 말벌에 쏘여 사망한 소방관이 순직이 아니라는 정부의 결정은 소방서비스 증가라는 변화에 따른 제도적 기반과 지지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2015년 국민안전처의 소방행정자료 및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소방관은 42,135건의 화재사고, 2,389,211건의 구급출동, 그리고 598,560건의 구조출동을 담당했다. 그로 인한 사상자는 2,180명이고, 재산 피해액은 자그마치 4,024억 원에 이른다.

대한민국 소방관들을 가리켜 ‘국민안전의 버팀목’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소방관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으며, 업무를 수행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마음껏 행복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소방관이 건강하고 행복해야만 비로소 소방법 제1조에서 정한 소방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만여 소방관들 중에서 약 99%가 지방직인 현실에서는 각 지자체별로 정한 우선순위와 예산 형편에 따라서 소방관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편차가 심하다. 이는 곧바로 소방서비스의 불균형을 초래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불이익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이 이번 조사에 참여한 소방관들은 하나같이 소방장비의 노후화와 부족한 출동인원을 추후 개선해야 하는 항목으로 꼽았다고 한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그동안 희생과 봉사만을 강요당한 채 인권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던 소방관들의 실태를 조명해 주었다.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에서는 이번 보고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 기회에 소방관 관련 법규 및 지침에 대한 꼼꼼한 검토와 조정을 해야 하며, 소방관의 인력 적정성과 소방장비 구입에 따른 예산의 타당성 여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소방관 신분의 국가직 전환을 통해서 대한민국 안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소방관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정책적. 제도적 변화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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