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운용·통번역…AI 상용화 사례 봇물

인간 의사를 돕는 AI(자료)

폐암 환자 김걱정(가명·65세)씨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의사 앞에 앉자 모니터가 켜진다.

3가지 최적의 암 치료법과 탈모 등 관련 부작용 설명이 나오고 선택해서는 안되는 치료법까지 올라왔다. 암 진료에 특화한 IBM의 인공지능(AI) '왓슨'(Watson for Oncology)이 김 씨의 키·몸무게·병력·가족관계 등 데이터를 토대로 효율적인 치료의 윤곽을 잡아준 것이다. 최종 치료법은 김씨와 주치의가 상의해 결정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을 AI가 해주고 있는 셈이다. AI 의사는 300개 이상의 의학 학술지, 200개 이상의 의학 교과서 등 1천500만 페이지의 의료 정보를 낱낱이 학습한 후 진료 결정을 내려주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다. 왓슨은 이번 달 중순부터 국내 병원의 진료에 실제 도입됐다. AI의 응용사례는 이제 생활 곳곳에서 거의 '지각변동' 수준이다.

◇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로…쓰나미처럼 밀려오는 AI

18일 업계에 따르면 AI를 선두로 한 '4차 산업혁명'의 파도는 이미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가상현실(VR)·빅데이터·3차원(3D)프린터·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들이 공상과학(SF) 영화의 소재가 아닌 일상 풍경이 되어가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개발이 출발점이 됐던 1차 혁명, 전기 제품의 대량생산을 촉발한 2차 혁명, 인터넷 등 IT(정보기술)가 부상한 3차 혁명 다음의 기술·경제체제 변화를 뜻한다.

4차 산업혁명을 요약하는 두 키워드는 '극단적 자동화'(extreme automation)와 '극도의 인터넷 연결화'(extreme connectivity)다.

기계가 인간의 정신노동까지 대신하고 세상 사물을 통신망으로 촘촘하게 연결해 버튼이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이뤄지는 마법 같은 서비스가 가능한 세상이다. 경제 법칙·노동 윤리·유통물류 등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격변이 불가피하다.

◇ "돈 벌어주는 AI"

4차 산업혁명의 대표 스타는 AI다. 기계가 사용자의 의도와 맥락을 이해하고 투자 결정·의학정보 분석·통역 등 업무를 해내면서 차별화된 자동화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어, 그만큼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자산투자·관리를 해주는 AI인 '로보어드바이저'가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쿼터백투자자문·디셈버앤컴퍼니 등 국내 전문 업체 6곳이 이런 로보어드바이저를 이용한 '로봇 펀드'들을 내놓은 상태다.

현실화한 '로봇 자산운용'[연합뉴스TV 제공]

'돈 벌어주는 AI'에 대한 신뢰도는 꾸준한 상승세다. 신한금융투자와 에프앤가이드가 올해 4월부터 진행하는 '로봇 vs 인간 주식 실전투자대회'의 최근 성적을 보면 1위가 수익률 2.68%를 기록한 위즈도메인의 로보어드바이저인 '위즈봇1호'다. 인간 금융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투자네비게이터'팀이 수익률 1.83%로 그 뒤를 따랐다.

우리·신한·기업·대구·부산 등 주요 은행은 고객 자산 분석과 금융 상품 추천을 해주는 AI '챗봇'(채팅형 로봇)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고객 응대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면서도 고품질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올해 말∼내년 초를 기점으로 상용화에 불이 붙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 통번역도 AI가…외국어 공부 필요없는 시대 오나

AI를 이용한 자동 통번역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맥락까지 매끄럽게 살려주는 데다 자율학습(머신러닝)으로 실력이 계속 좋아지는 AI 통번역의 장점 때문에 주요 IT 업체들이 공격적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이미 네이버의 '파파고'와 구글의 '구글 번역',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지니톡'이 통번역 정확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추세면 사람이 말만 하면 바로 자연스러운 외국어로 옮겨주는 SF영화 '설국열차' 속 휴대용 통역기도 수년 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IoT 냉장고 살펴보는 방문객들(자료)

AI는 또 다른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사물인터넷(IoT)을 만나면서 시장을 비약적으로 넓히고 있다.

자동차·책상·가로등·선박 등 세상 모든 사물을 센서와 인터넷으로 연결해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는 IoT 기술에 AI를 얹으면 소비자가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신상품이 쏟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IoT·AI 융합 사례의 대표 예로 지형지물과 통신하며 안전 운행하는 지능형 자동차와 건물이 각 방과 기기의 전력 상황을 감시하면서 에너지를 아끼는 '친환경 스마트 빌딩' 등을 꼽는다.

◇ '소량 다품종' 시대 여는 3D프린터

3D프린터도 4차 산업혁명의 '전도사'다. 전자기기 부품이나 인공 뼈 등 정교한 입체 물품을 즉석에서 찍어낼 수 있어, 완제품을 다른 곳에서 번거롭게 수송해올 필요가 없다.

기기 도면만 있으면 버튼 하나로 언제 어디서나 항공기 부품이나 무기 등을 척척 만들 수 있어 '바라는 대로 현실 속 물건이 튀어나오는' 꿈 같은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또 AI가 탑재된 3D 프린터는 특정 손님의 체형과 취향 등을 이해해 '안성맞춤'인 스케이트보드를 바로 만들어줄 수 있다. 물류비용 부담을 낮추고 진정한 '소량 다품종' 생산 시대를 여는 것이다.

◇ "기계가 일자리 독식" vs "사람 일 더 생긴다"

4차 산업혁명은 생활의 질을 전례 없던 수준으로 높여주지만, 동시에 사용자인 사람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분석과 소통 등 인간의 복잡한 정신노동까지 기계가 대신하면서 종전의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인공지능과 인간(그래픽)

예컨대 병원에서 고객을 응대하고 의사를 돕는 AI가 퍼질수록 행정 직원이나 간호사의 설 자리는 자꾸 좁아지게 된다.

사람이 하는 통번역 서비스는 학술·외교·예술 등 소수 고난도 분야를 제외하고는 10년 이내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통·판매 체제를 뒤바꿀 3D 프린터도 사정이 비슷해 물류 노동자나 제품 추천을 맡는 매장 매니저들을 실업 위험으로 떠밀 공산이 작지 않다.

AI로 인한 일자리 전망은 전문가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한국포스트휴먼학회 회장)는 "문명 발달사를 보면 종전 일자리가 기술 발전으로 없어지면 계속 새 일자리가 생겼다"며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이후에는 인간이 할 일을 몽땅 기계가 대체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일자리 분배가 큰 사회 이슈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도 "일하는 사람은 계속 일하고 기계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계속 집에서 놀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며 "사회 전체의 부는 늘어나겠지만,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기계의 일자리 독식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로봇이 사람의 역할을 100% 대체하기가 어렵고 솔루션 개발과 고객 서비스 기획 등 사람만이 할 일이 또 계속 생긴다는 얘기다.

김 위원은 "예컨대 '배달의 민족' 같은 배달 앱(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이 보편화했다고 해서 배달 업종에서 사람이 할 일이 더 줄진 않았다"며 "오히려 신선식품 배송 등으로 새 일자리가 더 생겼다"고 지적했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도 올해 8월 기업은행[024110] 창립 기념사에서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은행원의 역할이 고객의 성공과 행복을 돕는 '금융 컨설턴트'로 바뀔 것"이라며 "자산관리 역량을 키워 창업·성장 초기 기업에 대한 컨설턴트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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