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35>

지난 20일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주재로 '위험직무 소방공무원 순직 및 공상의 인정 등에 관한 법률'(일명 고 김범석 소방관법)에 대한 토론회가 개최됐다. 뜨거운 쟁점인만큼 국회 대회의실은 소방관과 소방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많은 사람을 구조해 '구조머신'으로 불렸던 고 김범석 소방관은 2014년 '혈관육종암'이란 진단을 받은 지 7개월 만에 안타깝게 31살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평소 술과 담배를 거의 하지 않고, 마라톤을 3시간 이내에 주파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진 8년차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그를 고통스럽게 했던 혈관육종암은 혈관의 세포에서 암이 발생하는 희귀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와 유가족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바로 정부 자세였다.

인사혁신처와 공무원연금공단은 유가족이 낸 순직 신청에 대해 "혈관육종암과 소방업무와는 연관성이 없다"며 순직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유가족은 고인의 뜻에 따라서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혈관육종암의 원인이 소방업무로 인한 것임을 밝히고 국가로부터 정식으로 인정받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토론회는 세가지가 쟁점이었다. 첫번째는 입법적 과제다. 까다로운 공무원연금법을 개정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가, 아니면 특별법을 마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두번째 논의는 의학적 과제다. 위험요인에 상시 노출되고 있는 소방관이 만약 혈액암, 백혈병 등 질병으로 고통받거나, 사망한다면 의학적으로 어떻게 직무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재는 소방관이 병과 업무의 인과 관계를 직접 입증해야 한다. 법과 의학전문가가 아닌 소방관이 직접 입증하기 보다는 입증책임을 다른 전문기관이나 전문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로부터 공상이나 순직을 인정받지 못하고 소위 '나홀로 소송'을 진행하면서 이중으로 고통받는 소방관,  유가족의 사례도 살펴봤다. 특히 토론회장에는 현재 암 진단을 받고 근무하고 있는 소방관이 자신의 사연을 소개해 장내를 숙연케 했다.

표창원 의원실이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암 진단을 받은 소방관이 공상을 인정받은 경우는 18명 가운데 단 1명에 불과했다.

소방관의 직무특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신뢰할 만한 연구자료가 없다보니 소방관이 질병에 걸리면 직무와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은 '암추정법(Presumptive Disability Laws)'에 의해 33개주에서 암과 소방관 직무의 연관성을 인정하고 있다. 주별로 심장질환, 폐질환, 전염성 질환 등이 소방업무와 연관이 있다고 발표된 자료도 있다. 

특히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산하기관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과 미 연방소방국(USFA)이 합동으로 연구해 발표한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고서는 시카고,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소속 3만명에 이르는 소방대원을 1950년부터 2009년에 걸쳐 추적조사, 소방관의 암 발생율이 상당 부분 화재진압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재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소방관의 고통에 대해 정부는 일반직 공무원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소방관만을 특별히 대우하기 힘들다는 대단히 편리한 논리 뒤에 숨어 수수방관하고 있다.  

'영웅'이니 '슈퍼맨'이니 하는 입에 발린 말보다는 미국 등 외국 자료와 사례를 적극적으로 살펴서 도입해야 한다. 대규모 역학조사를 실시해 탄탄한 의학적 근거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소방관이 대한민국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듯이 대한민국도 소방관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줘야 한다. 더 이상 '제2의 김범석 소방관'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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