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희생자 일일이 호명…"피해 지역 재건 때는 국고 유용 없어야"

"이들을 데려간 것은 지진이 아닙니다. 인간 탓으로 이들은 죽었습니다."

규모 6.2의 지진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지다시피 한 이탈리아 중부 산간 마을 아마트리체에서 지진 발생 엿새 만인 30일 저녁(현지시간) 눈물의 장례식이 열렸다.

아마트리체가 속한 라치오 주 리에티 교구의 도메니코 폼필리 주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운데 치러진 이날 장례 미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온 것은 지진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일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진이 강타한 이탈리아 중부 아마트리체에서 열린 희생자 장례식 [EPA=연합뉴스]

폼필리 주교의 이런 발언은 지진 취약 지대 건물의 내진 보강에 쓰여야 할 국가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지 않고 엉뚱하게 유용돼 이번 지진의 피해를 키웠다는 의혹을 둘러싼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현지 검찰은 4년 전 내진 보강을 해 재건축을 마쳤으나 이번 지진에 속절없이 무너진 아마트리체의 로몰로 카프라니카 초등학교, 내진 규정이 생긴 뒤 재건축됐으나 역시 붕괴돼 4명의 일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아쿠몰리의 성당 종탑 재건축 과정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폼필리 주교는 날선 비판에 이어 "우리는 아마트리체와 아쿠몰리를 재건해야 한다. 이 지역을 버려두는 것은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재건 작업에서만큼은 국고를 유용하는 일이 없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총 292명의 사망자가 확인된 이번 지진에서 아마트리체는 모두 231명의 사망자를 낸 최대 피해 지역이다. 진앙인 아쿠몰리에서는 1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폼필리 주교는 50명이 희생된 마르케 주의 아스콜리 피체노에서 지난 27일 열린 장례식에 이어 두 번째로 치러진 이날 합동 장례식에서 8분에 걸쳐 아마트리체와 아쿠몰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히 호명하며 고인들을 기렸다.

빗속에서 눈시울을 붉힌 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참석자들은 장례식 말미에 이탈리아 장례식 관습에 따라 박수를 치는 가운데 흰색 풍선을 하늘에 날려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장례식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대신해 교황자선소의 콘라드 크라예브스키 몬시뇰(주교품을 받지 않은 덕망 높은 신부)이 참석한 것을 비롯해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 마테오 렌치 총리, 라우라 볼드리니 하원 대표, 다치안 치올로슈 루마니아 총리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빠른 시일 안에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할 것임을 천명한 교황은 비탄에 빠진 주민들에게 각별한 연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크라예브스키 몬시뇰을 장례식에 파견한 것으로 보인다.

치올로슈 루마니아 총리는 이번 지진으로 숨진 루마니아 국적자 11명을 추모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았다.

한편, 이탈리아 당국은 지진 발생 이후 2천500차례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는 이 지역의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이번 장례식을 아마트리체에서 약 60㎞ 떨어진 리에티에서 치르려 했으나 유가족과 아마트리체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장소를 번복했다.

아마트리체에서는 10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실종자를 찾기 위한 수색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이탈리아 중부 아마트리체의 지진 희생자 장례식을 앞두고 관이 운구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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