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 절규를 들어본 적 있는가
‘살려달라’ 절규를 들어본 적 있는가
  • 박명식 고문(논설위원)
  • 승인 2015.12.08 18:35
  • 댓글 0
  • +더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원한 '캡틴' 박명식 고문의 '소방일기'

2002년 8월 마지막날이었다. 새벽부터 퍼 부은 집중호우가 시간당 최대 100㎜로 기억된다. 1일 강우량 989㎜, 기상관측 이래 유례 없는 폭우를 기록하면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피해를 냈다.

강릉을 중심으로 영동지방 6개 시군에서 사망 132명(강릉 51명), 실종 11명, 부상 62명 등 205명의 인명피해와 주택 2만3000동, 농경지 9400㏊ 침수, 이재민 4만1000여명(1만3000여 가구)가  발생하고 2조5000억여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삼바사슴’ 태풍 '루사'는 너무도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재앙의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으로서 <세이프타임즈>를 통해 현장경험을 소개해 교훈을 삼고자 한다.

박명식 세이프타임즈 고문(논설위원)

재난현장에서 소방관 활동은 많은 문제점이 있다. 재난관리법 제27조 및 동시행령 제34조(현장지휘)에서 ‘현장통제’는 소방본부장, 소방서장이 지휘토록 하고, 긴급 구조기관은 통제관과 협의 활동하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재난대응 기관 간의 이질성, 독자적인 작전, 자원관리 등의 고질적인 '자기 우선주의의 ' 사고방식이 가장 큰 문제다. 소방관의 통제를 따르기는 커녕, 협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경험한 재난현장의 무질서의 한 단면부터 소개한다. 1998년 혹독히 추웠던 겨울, 1m 이상의 눈이 내렸다. 서울에서 기자 3명이 ○○산의 '눈속에 피는 꽃'을 촬영하기 위해 전날 산에 올랐다가 조난됐다. 방송사에서 경찰과 119구조대 수색활동을 촬영한다며, 구조대원(당시 ○○소방서 방호구조과장) 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다. 잠시후 되돌아 온 대원들은 (경찰지휘자가) “우리 활동만 보일 겉 같아 119는 빠져달라”고 했다고 한다.

산불진화 현장은 코미디 같다. 꾀없고 미련한 소방대원은 밤을 새워 꺼지지 않는 현장을 지키지만, 시청 공무원과 경찰은 날이 어두워지면 하산해 집으로 간다. 다음날 오전 10시쯤 1개 중대 정도의 남녀 경찰들이 삽을 1개씩 들고, 수건을 뒷주머니에 꽂고 나타난다. 불이 다 꺼진 현장으로 도열해 행진한다. 언론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재난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면이다.

30여 일간의 구조, 실종자 수색작업에서 차마 웃지 못할 일 도 경험했다. 강릉시 왕산면 오봉리 35번 국도 속칭 ‘막굽재’ 산사태 현장. 오전 9시 30분경, 차량 6대가 매몰된 현장의 구조요청이 들어왔다. 방호구조과장이었던 필자는 구조대와 함께 현장에 도착했다. 산허리가 완전히 무너져 개천 아래로 쓸려 내려갔다. 차량 흔적도 알 수 없는 진흙탕 현장이었다. 2차 산사태 우려도 있었다.

기나긴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흙과 돌을 걷어내자 차량 윗부분이 발견됐다. 사람의 머리 부분이 발견되자 조심조심 피부에 상처라도 생기지 않도록 절단하고 치우기를 몇시간. 진땀 나는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중앙 119구조대까지 급파돼 사투를 벌였다.

힘겨운 구조작업 중 언덕위에서 구경하듯 ‘바라보던’ 강원지방경찰청장이 소리쳤다.
“구조대라는게, 무얼 그리 꾸물대, 빨리 빨리 작업하지 않고 ~”
그들이 동원한 경찰(모두 의무경찰)은 2차 산사태 조짐으로 현장 윗 부분에 배치해 놓았기에 수색작업 현장에는 구조대원들 뿐이었다. 시찰 나온 장관도 있었다. 수많은 관계자와 기자, 시민. 심지어 통제관인 소방본부장도 있었지만 통제관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울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어느 놈이 소리쳐, 무밭에서 무 뽑아내듯 (구조) 하는 줄 알아, 구조 방법을 알기나 해.”
119구조대는 모든 인명은 의사의 사망 확인 전까지는 살아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피부 한점,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손상시키지 않고 구조해 보호자에게 인계할 의무가 있다. 오랜 시간과 사투를 벌이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는 자들의 “빨리. 빨리”라는 ‘호통’까지 감내한다.

김상기씨 등 6명을 찿아 냈고, 한명 한명 들 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겨질 때의 유족들의 흐느낌 속에서 너무도 허망한 인생 무상을 되씹어 보던 기억이 새롭다. 구조현장에서 시커멓게 불에 타 숨진 아이를 안아 보았는지, '살려달라'고 울부 짖는 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있는지 묻고 싶다.

(편집자 주) 서울 보성고를 졸업한 박명식 고문(논설위원)은 1977년 소방관 제복을 입은 뒤 2007년 퇴직할 때까지 속초 등 4개 소방서에서 예방·방호·구조과장을 거치고 강원도 소방본부에서 예방·방호·상황실장을 역임했다. 현장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후배 소방관이 존경하는 영원한 ‘현장캡틴’으로 불린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