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기 칼럼] 안타까운 해경 사고 확실한 진상조사와 처벌 이뤄져야

2025-09-17     문영기 주필
▲ 인천 서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해양경찰관 고(故) 이재석 경사 영결식'이 엄수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1일 갯벌에서 고립된 노인을 구조하기 위해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준 이재석 경사가 현장에서 순직했다.

이 경사는 인천 꽃섬 인근 갯벌에 노인이 고립됐다는 신고를 받고 혼자 출동했다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사고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해경의 안이한 대처가 사고를 불러 왔다는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경사가 출동할 당시 같은 파출소에는 6명의 다른 동료들이 있었지만, 아무런 도움이나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팀장 A씨는 드론 업체의 추가 신고를 받고서야 이 경사의 출동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갯벌에 고립된 노인이 있다는 사실을 해경에 알린 드론 업체 관계자는 신고 후 "한 명만 출동한 것이 의아했다"며 "다른 출동 사례가 세 차례 있었는데, 구조활동을 벌이면 보트와 호버크래프트도 왔었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이 경사와 요구조자의 상황을 살피던 드론 업체 관계자는 추가 지원이 없자 다시 신고했다. 추가 신고가 이뤄지고서야 영흥파출소 팀장 A씨는 이 경사가 혼자 구조출동을 나간 사실을 동료들에게 알렸고,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당시 팀장 A씨가 이 경사의 출동 사실을 알고도 동료들에게 상황 공유를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팀장도 출동 사실을 몰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출동 사실을 알고도 상황 공유를 늦게 한 것이던, 출동 사실조차 몰랐던 둘 다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상황 공유를 늦게 했다면 2인 1조가 기본인 수칙을 알고도 무시한 것이고, 출동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면 팀원에 대한 관리와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근무태만이다.

이 경사는 적어도 30분 이상 바다 위에서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드론 촬영으로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구조가 늦게 이뤄지는 바람에 이 경사가 희생됐다면 이는 묵과할 수 없는 직무 유기다.

▲ 갯벌에 고립된 노인을 혼자 구하려다 숨진 고(故) 이재석 경사 팀원들인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직원들이 이 경사 발인을 앞두고 인천 동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고 이후에도 해경의 납득할 수 없는 대응은 이어졌다. 이 경사의 당직 동료들은 "영흥파출소장이 이 경사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니 사건과 관련해 함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파출소장으로부터 인천해경서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같은 증언이 사실이라면 해경은 동료의 안타까운 순직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것은 물론 이를 미담으로 포장해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해경의 은폐 시도는 이 경사의 사고가 불가항력의 사고가 아닌 해경의 업무태만과 실수로 인한 사고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해양경찰청은 "인천해경서장과 파출소장이 내부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서장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2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순직 해경 사건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해양경찰청이 아닌 외부기관에 맡겨 독립적으로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자마자 김용진 해양경찰서장은 "순직 해경 사건 관련 대통령의 말씀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인천해경서장과 영흥파출소장, 담당 팀장은 대기 발령됐다.

하지만 김 청장의 책임감이 '대통령의 말씀'에 따른 것이라면 해양경찰의 총 책임자로서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다. 해경청장은 대통령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부하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옳다.

대통령이 외부기관에 조사를 지시한 만큼, 사고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