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기 칼럼] 끝없는 의·정 강대강 대치, 신음하는 국민들

넉 달째 지속되고 있는 의사들의 이기적인 집단행동에 비난 가중 강경책만 고수하고 있는 정부와 아무런 중재 노력도 없는 정치권 지치고 힘든 국민들 생각해 정부와 의료계 정치권 모두 각성해야

2024-06-19     문영기 주필
▲ 서울대병원에 이어 전국 병의원이 집단 휴진에 돌입한 18일 서울의 한 동네의원에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17일 집단 휴진에 들어간데 이어 18일에는 전국의 개원의들도 집단행동에 가세했다.

의협은 휴진에 참여한 비율이 전체의 약 50%에 이른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집계는 1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4년 전 코로나19 유행 당시 의대증원에 반대해 휴진에 참여했던 비율(33%)에 비해 저조한 참여율이다. 실제로 언론사에서 현장을 조사한 결과 문을 닫은 병·의원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해서 '다행'인 것은 아니다. 문을 닫은 병원이 관내 지역에서 유일한 병원일 경우 환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참여율은 의미가 없다.

더구나 서울대병원에 이어 '빅5' 병원의 교수들도 27일부터 무기한 집단휴진에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 국립암센터같은 공공의료기관까지 집단휴진 움직임에 동조할 태세여서 환자들의 불안은 가중하고 있다.

▲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주도로 개원의와 일부 의대 교수들이 집단휴진에 나선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는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연합뉴스

의협은 18일 여의도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고, 의대 증원안 재논의, 필수의료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 행정명령과 처분 소급 취소 등 3가지 요구안을 내걸었다.

의료 쟁점 사안 재논의를 제외한 두 가지 요구는 사실상 치외법권적 요구사항이다. 의대 증원안은 이미 정원이 확정된 상황이고 100일 넘도록 지속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의료 현장 이탈과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을 몽땅 없던일로 해달라는 것이다.

의대 정원이 이미 확정된 상황에서 정원을 재논의하면 올해 대학입시는 혼란이 올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전공의들에게는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며 정부가 한발 물러섰는데도 행정처분을 아예 없던 일로 해달라는 것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뻔뻔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을 법이 금지하는 '진료 거부' 행위로 보고 엄정히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도 강경일변도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진료거부는 전원 고발하고, 휴진에 참여한 교수들을 대상으로는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의협이 집단행동을 지속할 경우 '법인의 해산'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정부가 의대 증원안을 내놓은 지 이제 넉 달이 흐르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의사들은 아무런 대화 없이 강대강 대치만을 계속해 오고 있다.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다.

환자들을 볼모로 벌이고 있는 양측의 치킨게임에 국민들은 지치고 힘들다. 대형 병원들 역시 계속되는 진료거부에 따른 적자로 신음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의료진의 구조조정까지 검토하고 있다.

의사들이 빠져나간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던 다른 의료인력들이 오히려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는 불합리한 상황까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의 이기적이고 불법적인 행동과 정부의 무능함까지 겹친 상황에서 정치권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총선 이전에는 선거판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다는 핑계라도 있지만, 새롭게 구성된 국회마저 시작부터 정쟁으로 날을 지새고 있다.

권한을 위임한 정부와 국회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면 과연 누구에게 국정을 맡겨야 할지 암담하다.

정부는 의료계를 설득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처벌하겠다는 엄포만 놓지 말고 실행에 옮기는 결단이라도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계 역시 무리한 요구만을 내세우지 말고 환자들을 먼저 생각해 주기 간절히 바란다. 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에 적극 개입해서 중재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