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기 칼럼] 신상공개보다 '젠더폭력' 막을 안전망 확보가 시급하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중형선고 불구 피해자 불안 신상공개보다 '여성안전' 지켜줄 '입법조치' 시급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의자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20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살인미수에 강간 혐의까지 추가되면서 1심보다 형량이 늘었다.
하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온 뒤 가진 인터뷰에서 피해자는 "가해자가 출소하면 50살"이라며 자신을 살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가해자로부터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며 울먹였다.
20년의 격리조치도 불안한 것이 한국 사회의 형법 체계라면 뭔가 확실한 보완이 필요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여성을 향해 가혹한 폭행을 가하고 성폭행을 시도한 끔찍한 범죄에 우리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가해자 검거 이후에도 신상공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됐고, 한 유튜버와 구의원이 가해자 신상을 공개하면서 사적제재 논란도 빚어졌다.
피해자의 변호인도 가해자와 같은 위험인물에 대해서는 피의자 단계에서 신상공개가 이뤄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12일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 확대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 사건이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상공개 확대 방침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상공개 확대 지시는 면밀한 검토를 거친 제안이라기보다는 여론을 의식한 조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상 공개보다 시급한 것은 안전망 확보다.
여성 보호를 위한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지난달 서울 금천구에서는 40대 여성이 교제하던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이 경찰에 폭행신고를 했고, 가해자를 불러 조사까지 했지만 적절한 조치 없이 귀가 시킨지 불과 몇 시간도 안돼 사고가 벌어졌다.
교제폭력에 의한 폭행사건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교제폭력 검거 인원은 2015년 7600명에서 지난해에는 1만28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같은 강력범죄가 발생했음에도 국회의 입법활동은 지지부진하다. 가정폭력방지법의 적용 범위를 교제폭력까지 확대하는 법안과 교제폭력을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해 법안을 만들자는 안이 국회에 계류중이다.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교제 범위의 모호성'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심도 있는 검토는 국회 차원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사이 여성들은 가혹한 폭력행위에 노출되면서도 공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원인부터 짚어야 한다. 가정폭력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위에 대해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와 같은 관대한 정서가 가장 큰 문제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일상적이고 훨씬 가혹하다는 점에서 일반 폭력사건보다 무겁게 다뤄져야 한다. 스토킹 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같은 범죄가 더 심각하다는 점은 이미 여러 사건에서 입증된 바 있다.
여성들의 안전확보는 이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와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