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기 칼럼] 화려하지만 공허한 한·미 정상회담

워싱턴 선언 북핵 위협 한미 대응 다소 진전, 실질적 내용 부족 가장 큰 현안 반도체 등 경제 문제 역시 구체적 성과 미흡 평가

2023-04-27     문영기 주필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한미동맹 70주년이라는 의미와 국빈 방문이라는 의전이 더해져 상당한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특히 윤 대통령은 미국 방문에 앞서 외교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일본과의 관계개선'이라는 상당한 큰 선물보따리를 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한미간의 회담은 마무리됐고 확장억제방안을 담은 '워싱턴 선언'이 발표됐다. 이 내용의 골자는 북한의 핵 공격 시 정상 간의 즉각적 협의와 핵무기를 포함한 전력 대응, '한미 핵협의 그룹'(NCG) 창설이다.

북한의 핵 위협이 발생할 경우 한미간의 대응 수위를 높이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명문화한 것은 실질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실제로 원했던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다.

협의체가 만들어져 핵 공격에 대한 대응조치가 보다 긴밀해진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핵 공격을 당했을 때 미국이 즉각적인 보복조치에 나설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미국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워싱턴 선언의 내용에 대해 '한미간의 협의 횟수가 조금 늘어나고, 전략자산이 조금 더 오는 것 이외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다소 가혹한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경제 분야에 대한 논의도 구체적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두 정상은 가장 큰 이슈인 반도체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에 대해서는 "첨단기술 분야에서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더욱 강화시켜 나갈 수 있도록 긴밀한 협의와 조율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전기차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대한 구체적 진전이 있었는지는 이 내용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 삼성전자가 1분기 매출 실적을 발표한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 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내고 있는 반도체 문제는 어떤가. 미국은 '한국기업의 투자와 사업활동에 대해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 워싱턴 선언의 내용이다.

미국은 반도체 기업에 대해 사실상 영업기밀을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미국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면 한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늘리지 말라고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양국 정상의 선언내용에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 이슈와 관련해 양국은 '차세대 신흥·핵심기술대화'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 협의체가 한국의 국익을 반영하는 강력한 채널이 될지 아니면 미국의 '경제적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과연 어떤 성과를 거둔 것인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 미국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주요 인사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지만, 한국에 '선제적 양보'에 대해 일본은 여전히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은 미국 방문을 앞두고 가진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무릎 발언 논란, 대만 관련 발언 등으로 국내 여론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까지 크게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 과연 윤 대통령은 대미 정상외교를 통해 어떤 성과를 거뒀는가.

▲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전참전용사기념공원을 찾아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줄곧 '자유'라는 가치를 지향해왔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도 역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미국과 공유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가치동맹'은 상생의 의미보다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 아래, 이를 반대하거나 다른 국가들에 대항하는 배타적 협력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한국의 대중 수출과 반도체 수출은 급감하고 있지만, 가장 거칠게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 미국의 지난해 대중 무역액은 사상 최고였다. 미국의 대기업 총수들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중국 방문에 나서고 있다. 미국 정부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마크롱의 중국 방문에서 보듯 유럽 각국은 중국이라는 '매력적인 시장' 공략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가치동맹 외교'가 '실용'을 포기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만큼 중대한 것이라면, 과연 손해를 상쇄할 만큼 대미 외교의 성과는 얼마나 큰 것인가. 그리고 그토록 강조해 온 '자유'는 얼마나 확고히 지켜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