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기 칼럼] 마당 내주자 안방 내놓으라는 일본
윤 대통령 23분간 TV생중계하며 정상회담 성과 설명 한국의 양보에 비하면 일본에게 얻은 것은 적어 보여 부정 여론 탈출 위해선 '상응하는 조치' 역량발휘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장시간 피력했다. 무려 23분간 그것도 이례적으로 TV를 통해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 발언은 대부분 한일 정상회담 성과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실상 대국민 담화였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 대상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있다"며 야당의 비판을 겨냥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요지는 과거에 발목 잡혀 악화한 한일관계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미래지향적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일리있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안보 협력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한일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강한 것은 한일관계 회복의 방식이 부적절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의 내용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적이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전범기업이 강제징용과 강제노동을 시킨 데 대한 배상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두 부정한 것이 한국 정부의 해법이었다. 이는 일본 법원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윤 대통령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는 한반도 정세를 거론하면서, 2차 대전 후 전격적으로 화해한 독일과 프랑스의 예를 들었다. 그런데 백 세가 넘은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강력한 법률을 여전히 시행하고 있고, 정권이 바뀌어도 끊임없이 전쟁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온 독일과 최고 전범들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현직 각료들이 참배하는 일본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일본이 수십 차례에 걸쳐 사과했다고 주장하지만,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아베 총리는 이를 전면 부정하는 퇴행적 입장을 밝혔고, 기시다 총리 이를 계승하는 인물이다.
우리의 '대승적 결단'으로 이뤄진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은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 명확히 잡히는 것은 아직 없다. 더구나 일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에 일본은 독도 영유권 문제와 일본 위안부 합의 복원 등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국회 답변을 통해 이런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과거 '날리면' 발언 파장 과정에서 보여준 박 장관의 전례를 볼 때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요구를 했다면, 이번 정상외교는 참담한 실패작이 분명하다. '대승적 결단'을 통해 마당을 내주니 안방을 내놓으라는 적반하장이다.
윤 대통령은 23분간이나 한일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가장 민감한 문제인 독도 영유권, 위안부 합의,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정상회담 내용을 공개하라는 청구가 제기된 만큼 지켜볼 일이다.
외교는 등가교환(等價交換)이다. 어떤 문제를 양보하면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윤 대통령은 답답한 마음으로 장시간 토로했지만, 민감하고 궁금한 문제에 대한 해명 없이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 것 이상은 없어 보인다.
이번 외교가 과연 성공적이었는지는 한일 양국의 여론 조사가 간접적인 지표가 될 수 있다. 일본은 긍정평가가 60%였다면, 한국은 부정 평가가 60%를 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번 정상외교가 윤 대통령의 주장대로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위한 토대가 되려면 셔틀 외교 복원으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이 이뤄질 때 일본이 어떤 '보따리'를 풀어 놓는지 보면 될 일이다. 보따리를 풀어 놓을지 아니면 안방을 차지하려 할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