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구조사에 국민 생명 못 맡긴다" 임상병리사 '총력투쟁' 선포

2023-03-14     김미영 기자
▲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왼쪽 두번째)이 간호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총궐기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 대한임상병리사협회

"1분 1초에 생사 갈리는 응급실, 정식 면허 소지한 임상병리사가 상주하게 해달라."

정부가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며 임상병리사들이 고유 업무 영역을 침범당할 위기에 놓였다.

응급구조사는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내에서 응급환자 심전도 검사 등 응급처치를 하는 역할을 맡고 응급실 도착 이후 역할은 임상병리사가 맡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2023년 제1차 중앙응급의료위원회'를 열고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을 제출하며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시의적절한 응급처치를 통한 환자 생존율·경과 개선을 위해 구급 현장, 병원 응급실 등에서 종사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정안에는 응급구조사가 병원 응급실 등에서 할 수 있는 업무로 '정맥혈 채혈', '심전도 측정·전송'이 추가됐다.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임상병리사는 정규 대학 교과과정을 거쳐 복지부에서 인정하는 면허를 취득한 의료기사인 반면 응급구조사는 이 같은 면허가 없는 자격증 소지자"라며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가 확대되면 결국 불필요한 의료비용 지출 증가로 피해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의료계에선 임상병리사-응급구조사 간 갈등이 심화되면 '제2의 간호법' 사태로 커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 둘은 간호법 저지를 위해 뭉친 13개 의료단체인 보건복지의료연대에 속해 있다.

복지부는 조정안이 확정되면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내년 하반기부터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임상병리사들은 "대통령령으로 정해진 임상병리사의 업권을 명백히 침탈하는 행위"라며 "국민의 보건·의료 향상에도 기여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 의료기관 내 응급실에서 심전도 측정과 채혈 업무을 두고 임상병리사와 응급구조사간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임상병리사협회는 현재 다수 응급실 내 의사 수 부족 문제가 심각하고 응급처치에 투입될 의료 인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에는 공감하면서도 '비전문가'인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확대 결정을 내린 복지부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밝혔다.

임상병리사협회는 "응급환자에 대한 각종 검사가 신속·정확하게 진행돼 진단·치료 정확도를 높이려면 임상병리사가 응급실에 24시간 상주하게 하는 취지의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응급실에서 심전도 측정과 채혈을 할 임상병리사가 부족할 경우 임상병리사를 충원하도록 조정안을 수정하라"고 촉구했다.

임상병리사협회 관계자는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6호는 의료인이 의료기사가 아닌 자에게 의료기사의 업무를 하게 하거나 의료기사에게 그 업무 범위를 벗어나게 한 때에는 위법임을 규정하고 있다"며 "이번 조정안은 현행 법체계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의료체계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또 "협회는 2019년 대한응급구조사협회와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마련한 공청회에서 구급차와 의료기관 밖 응급상황에선 심전도 측정을 응급구조사 업무로 허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며 "하지만 의료기관 내에서까지 업권을 침탈하려는 행위에 대해선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임상병리사들은 응급구조사들에게 이미 업권을 충분히 양보했다는 입장이다.

임상병리사협회 관계자는 "의료행위를 비전문가인 응급구조사에게 맡기는 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행위"라며 "장인호 회장을 비롯한 7만2000여명의 임상병리사는 이번 조정안 철폐를 위해 법적 대응과 시위 등 총력투쟁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