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권 칼럼]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과연 안전했을까 ?

2022-12-30     한상권 논설위원
▲ 한상권 논설위원

1월 11일, 새해 떡국이 다 식기도 전에 광주시 서구에서 공사 중이던 화정아이파크(HDC 현대산업개발) 한 개 동이 상층부에서 붕괴됐다.

대부분의 붕괴 원인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안전조치 미흡과 설계를 임의변경하면서 정상적인 건설 현장이 아니었다는 게 밝혀지며 다시 한번 우리를 각성하게 했다.

바로 1월 17일 시행 예정이었던 '중대재해 처벌 법'을 앞두고, 법 소급 적용에 관한 논란을 남겼지만 결국 HDC 현대산업개발 경영자는 '천운(天運)'으로 용케 피해 갔다.

3월 4일, 강원도 울진 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대한민국 화재 역사상 가장 긴 213시간을 태우고 사그라졌다.

당시 울진에 있는 한울원전과 삼척 액화천연가스(LNG) 기지와 같은 국가기간시설과 인구밀집지역, 그리고 금강송 군락지 근처까지 불길이 확산되며 우리의 가슴을 조여왔다.

정부 차원에서 총력 진화 작전을 폈지만 대형 불줄기를 잡지 못했는데, 결국 봄비가 내리면서 산불은 약해지고 곧바로 진화에 성공하면서 또 한 번 우리는 자연의 힘(?)을 경험할 수 있었다.

8월 8일, 서울시가 물에 잠기면서 7명 사망에 6명이 실종됐다.

한여름밤의 강남은 불야성(不夜城)이 아니라 물이 넘치는 물야성(水夜城)이 됐고,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은 물 저장고가 되가는 걸 목격했다.

비가 내리면 교외 지역이나 농촌은 땅이 빗물을 흡수하고, 하수구로 내려보낼 수 있는 자연순환장치가 가동되지만, 도심은 온통 콘크리트 바닥뿐이니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여름밤이었다.

9월 26일, 대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목숨을 잃은 피해자는 모두 7명에 중상이 1명이었다.

소방당국과 경찰 관계자는 방재 시설과 스프링클러, 옥내소화전배연설비, 연기배출 장치 등은 정상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것 뿐만이었을까.

8명의 사상자를 낸 초대형 화재사건의 원인에는 인화물질 관리, 초동대처 미흡 그리고 대응 미숙 등 인재(人災)의 영역임이 확인 됐다.

10월 15일, 세상에 보기 힘든 기묘한 사건이 기묘한 기업 내에서 발생했다.

평택시에 있는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에서 소스를 배합하는 기계에 끼여 안타까운 한 청년의 목숨을 잃었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노동자 사망 후 장례식장에 보내진 사망자가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빵을 보면서 우리는 '현타'를 제대로 경험하면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29일 서울 이태원, 올해도 초대형 사고는 우리 사회를 비껴가지 않았다.

이미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시민 안전의 책임을 져야 할 지방자치단체와 넓게 정부의 대처는 촌극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경찰과 소방의 안전인력을 충분히 배치하지 않았고, 해당 지역의 안전 총책임자인 구청장은 이태원 주변을 맴돌았고, 경찰서장은 관용 차량에서 손에 땀만 쥐어짜고 있었다.

누구 하나 나서서 자신의 일처럼 사건을 바라보고 해결하고, 또 책임지려는 사람은 지금도 없다는 게 우리에게 씁쓸함을 남겼다.

CPR을 하며 환자를 돌보고 아수라장인 현장을 관리해야 할 공공의 빈자리에는 일반 시민이 지키고 있었다.

12월 29일, 경기 과천시 제2경인고속도로 고가에 있는 방음터널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37명이 다쳤다.

통행하던 트럭에서 발생한 화재는 곧바로 지붕을 덮은 플라스틱 방음재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전체 방음터널을 태우는 광경은 마치 지옥의 문이 있다면 그렇게 생기지 않았을지 착각하게 만들었다.

2022년, 우리 사회는 역시 안전하지 않았다.

아파트 붕괴 현장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끝이 없이 이어져온, 우여곡절을 가감 없이 경험한 2022년이다.

어떤 사고는 사업주의 이기주의에서 파생된 사회적 오만함에서 발생된 사고이고, 또 어떤 사고는 사회현상을 안일한 시각으로 방관하다 발생한 인재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늘 그렇듯이 대부분의 현장에는 우리 시민들이 있었고 누구 하나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려 하지 않고 기꺼이 타인을 구하려는 용기를 볼 수 있었으니, 사회를 움직이는 일말의 희망은 역시 우리 시민들에게 있음을 확인 했다.

이제 2022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잠시라도 지나간 2022년의 대형 사고들을 되돌아보고, 또 훌훌 털어버리고 싶다.

그래서 다가오는 2023년은 붕괴, 화재, 그리고 안전사고에 관한 어떠한 뉴스도 접하지 않기를 바란다. 꼭 그렇게 되는 계묘년(癸卯年)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