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은 '목욕재계(沐浴齋戒)'란 단어에 각별한 의미를 뒀다. 명절을 앞두거나, 서낭굿을 할 때도 기제사를 모실 때도 빠지지 않았다.

목욕재계란 무엇인가. 머리를 감고(沐), 몸을 씻어(浴) 내는 목욕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더해 마음까지 깨끗하게 하는 공경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재(齋)와 주변까지 경계(戒)해 몸가짐을 조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사를 지내거나 신성한 일을 할 때,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행위를 말한다.

목욕재계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혁거세편은 '혁거세를 얻은 날 아이를 목욕을 시키니 하늘이 청명해지고 광채가 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아이는 신라의 왕이 됐다. 이같은 이유로 3월 초하루부터 삼짓날인 청명절까지 목욕을 하면 정숙해지고 귀하게 된다는 믿음이 내려왔다. 삼짓날은 맑은 물에 목욕을 하는 날이 됐다. 계욕의 날(禊浴之日)이라고 했다. 현대사회도 음력 3월 3일 삼짓날을 ‘계욕일’이라고 해 맑은 물로 목욕을 하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편에서도 목욕재계의 의미가 나온다. 가락의 백성들이 그들의 신령이자 왕인 수로를 처음 모시던 날이 공교롭게도 3월 삼짓날인 '계욕(禊浴)의 날' 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신령을 모시고 몸을 맑게 하는 날로 나라의 천신이자 첫 왕을 맞이하던 날이 다름 아닌 맑고 깨끗한 날인 '욕의 날(禊浴之日)' 이었던 셈이다.

옛날부터 신령스러운 것, 거룩한 것은 곧 맑고 깨끗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음을 <삼국유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신라와 가야시조 탄생설화 이후, 그 같은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목욕재계는 신령을 모시고, 섬길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되는 '정갈함'을 의미한다.

<삼국유사>를 보면 당시 목욕은 지금의 위생이나 미용적 의미가 아닌 일종의 주술(呪術)적인 행위다. 요즘은 목욕과 샤워는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대중목욕탕도 때를 미는 것 보다도 숙취를 해소하거나, 아이들에게는 놀이터로 변한 듯 하다. 목욕만 있고 재계가 없는 것이 아쉽다.

  신윤복의 단오풍정(端午風情).

키워드

#N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