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창포로 머리를 감고 잿물로 빨래를 했다. 팥이나 녹두로 만든 조두(澡豆)라는 세정제로 목욕을 했다.

단오에 창포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한 것은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 이상을 담고 있다. 춘궁기에 접어 든 이 시기는 몸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계절이다. 머릿결은 물론 피부는 푸석해지고 윤기를 잃어 가는 시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비타민C가 풍부한 창포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통해 두피와 피부에 영양을 공급했다. 단오날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피부도 좋아지는 이유 중의 하나다.

선조들은 현대의 세탁비누 용도로 '잿물'을 사용했다. 잿물은 나무, 짚 등을 태운 재에 물을 부어 침전시킨 물. 재의 주성분인 탄산칼륨이 물속에서 가수분해돼 강알칼리성을 띄는 탄산나트륨으로 변해 높은 세척력이 생긴다. 지방과 단백질이 주성분인 때를 알칼리성 잿물에 담가두면 녹아 내려 세탁이 됐다.

아궁이를 사용한 우린 민족의 생활속 지혜였다. 재료에 따라 세척력의 차이가 났다. 세탁물의 성격에 따라 짚, 콩깍지, 뽕나무, 잡초 등을 적절히 이용했다. 조선시대 가정살림에 관한 내용을 다룬 '규합총서'를 보면 쪽빛 옷은 녹두물과 두부순물에 빨면 새롭다. 묵은 때는 콩깍지 잿물이 잘 빠진다고 기록하고 있다.

왕과 왕비는 목욕할 때 팥으로 만든 비누를 사용했다. 팥을 맷돌에 갈아 가루를 만들었다. 얼굴에 물칠을 하고 손바닥에 팥가루를 묻혀 씻으면 때가 잘 빠지고 살결도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팥의 주성분인 안토시아닌의 항산화 효과와 미세거품을 일으키는 사포닌성분이 노폐물을 제거하는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양반가에서는 별도의 목욕시설인 정방을 설치하고 조두를 만들어 사용했다. 대가집 규수들은 녹두나 팥가루를 조두박에 담아 사용했다. '더러움을 날려보낸다'는 의미의 '비루(飛陋)'가 현대의 비누 어원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민들은 귀한 팥보다는 콩, 쌀겨, 조, 쌀뜬물, 콩깍지 삶은 물 등을 사용했다. 곡식을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웠던 '방앗간집 딸'이 미인이 많았다고 전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최근 비누가 인체에 치명적인 위해(危害)를 가하는 계면활성제때문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동물 기름과 화학물질로 만든 서양 비누와 달리 재나 팥, 창포 등 천연재료를 이용해 세탁하고 목욕, 세안을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비누 용도로 쓰인 팥가루(완쪽)와 세탁제로 사용한 잿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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