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학교에서 배웠던 북향민이 결혼한다고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인 4학년이 됐던 해 10월에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한국 사람이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혼식은 가족끼리만 조용하게 치른다고 했습니다.

일단 고마웠습니다. 갑작스레 연락을 끊었고,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결혼식을 하기 한 달 전이라도 알려줬으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마음이 찹찹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에서도 엘리트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 달리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한 소중한 선택이니 더는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 땅에 대해 져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이것을 수행하기 위해 받아들인 게 우리 아이들에게 교육기회를 고르게 제공하는 일이고, 이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청소년과 청년을 위해 독서 교육을 진행하는 대안학교를 운영합니다.

▲정이신 논설위원
▲정이신 논설위원

저는 능력이 부족해서 다양한 소리를 내지 못하기에,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도 한 가지 소리만 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응답으로 성령님이 주신 사역이 대안학교 운영입니다. 그래서 제가 있는 자리에서 늘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관해 말합니다.

청소년과 청년의 학습 능력 향상이나 효과적인 공부법, 교육에 관련된 말을 하면 제가 목사고 대안학교의 대표간사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죠. 대한민국은 사교육이 병이에요, 사교육 시장을 아예 없앨 수 있는 공교육 정책이 나와야 해요"라고 맞장구치며 대응합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이런 생각과 대응이 너무 편협해 보입니다.

교육에 사·공을 구분하는 게 이상하고, 공교육만으로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어쭙잖습니다. 이는 만물을 새롭게 하거나 재창조하지 않고 천국으로 만들겠다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청년을 위한 사교육은 필요합니다. 오히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질러도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 문제입니다.

교육과 관련된 일은 자본이나 정치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한국은 마몬(Mammon)과 특정 대학교 교육계열학과 출신이라는 연줄에 교육정책이 많이 휘둘립니다.

그래서 공교육이 사교육을 보완재로 이끌어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사교육이 만든 길을 따라갑니다. 이를 넘어서 보고자 저희가 대안으로 모색한 게 '책 읽기 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북향민은 이 후유증이 더 심합니다. 북향민도 다양한 부류가 있고,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 없이 한국으로 온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조력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했고, 대안학교에서 가르쳤던 북향민 중에 그런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대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알려온 그녀는 유명대학으로 진학했고, 한국 학생들과 경쟁해 장학생까지 됐던 실력자였습니다. 대안학교에서 공부할 때, 대학 1∼2학년 때 그녀는 사회에 먼저 진출한 북향민의 한국 사회에서의 책무에 관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가르쳤던 북향민 중에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해야 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말한 건 그녀가 처음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폐지로 버려지는 책을 보며, 그녀는 북한에서 책 구하기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책을 북한으로 보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북한에서 했던 일을 떠올리며,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공부하고 있는 후배 북향민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결혼으로 진로를 바꿨고,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했습니다.

침묵하며 시민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절망은 더 화려하게 사람들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가정 꾸리기로 사회적 책무를 감당하는 방향을 바꾼 그녀도 방향만 바꾼 것이기에, 가정을 통해 아이의 학부모로서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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