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
▲ 정이신 논설위원

공자(孔子)는 시중(時中)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교화시키려는 군자라면 중화(中和)를 수신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이해합니다.

시중입극(時中立極)이라는 말도 있는데, 입극은 최고점을 뜻합니다. 이 표현에는 공자의 중화사상으로 길러낸 사람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시중을 시의(時宜·때에 마땅한 것)로 이해하고, 기독교 신앙이 지녀야 할 시의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지니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몸이 뜨거우니 야훼 하나님의 정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하심을 따라 의롭게, 중년에는 남을 거짓이나 가짜 비전(fake vision)으로 미혹하지 않아야 하는 나이답게 정직하게, 늙어서는 지나온 흔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하니 과거의 역사를 바로 보며 미래를 말하는 예언자처럼 깨끗하게.

목사이고 한국교회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한국교회의 시의를 늘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한국교회는 침체기를 거쳐 암흑기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동안 민족적인 심성에 근거한 성장을 많이 해왔기에, 이것의 후유증을 앓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한국교회가 갖춰야 할 시의를 찾아 지니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부끄럽지만 한동안 이런 생각 때문에 목사직을 내려놓기 위해 애를 썼었습니다. 사명감보다는 상황 논리 때문에 목사가 됐다고 여겼고, 목사에 대한 저의 생각이 현장과 크게 다르다는 핑계로 목사직을 내려놔야겠다고 오랜 시간 고민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발전하리라는 희망이 보였던 것도 아니고 침체기·암흑기로 갈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기에, 목사직을 계속 맡고 싶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착잡하게 기도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만난 이가 북향민입니다. 그런데 이들 속에 미래 한반도에 대한 비전(vision)이 담겨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침체기·암흑기를 거치더라도 그 뒤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씨앗이 북향민과 통일선교(아나돗공동체에서는 북한선교를 통일선교라고 합니다)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기도했던 흔적을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두고, 목사직으로 인도하신 성령님의 섭리 앞에 순종했습니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주시려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의 시의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침체기라고 판단했던 상황에 마지막 빛으로 주어진 평화로운 한반도가 보였습니다.

북향민이 대한민국에 와 뿌리내린 것은 정치적인 적성국으로 부르던 나라에 반대편 나라의 국민이 와서 사는 상황입니다. 이게 저에게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본 절망의 화단에 핀 희망의 꽃, 새 언약이었습니다(예레미야서 31장). 새 언약이 주어졌는데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침체기·암흑기를 거치더라도 그 너머에서 성령님이 주신 새로운 빛이 다가오고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한 예언(預言)은 무교(巫敎)에서 말하는 점사(占辭)와 같은 예언(豫言)이 아닙니다. 그래서 단순히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과거·현재·미래가 같이 어우러지는 사건을 선포합니다.

만약 성경의 가르침을 가지고 점사처럼 몇 년 몇 월 며칠에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현혹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활동하는 시대는 완벽한 암흑기입니다.

부달시의(不達時宜·아주 완고해 시의를 따르려는 변통성이 없음)에 빠진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뜨거운 몸을 지녔다고 노익장을 과시하려는 만용을 부릴 가능성이 큽니다.

노익장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도록 시의를 빼고 흥미만 제공하는 교회에는 내일이 없습니다.

평화로운 한반도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 이뤄지기에 이를 위한 시의를 우리가 꼭 갖고 있어야 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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