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목사의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나름대로 아빠 노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동원해서 딸을 위한 학습 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조립했습니다.

여기저기 나와 있는 학습 관련 프로그램의 장점을 따서 딸에 맞춰 손댔습니다.

프로그램에 맞춰 그도 딸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가 가르칠 수 있는 게 겨우 한 과목뿐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그가 가르치는 과목을 최대한으로 활용, 이것이 다른 과목의 학습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가 조립한 것은 '문해력 향상을 위한 독서법'이었습니다. 이는 기존에 나와 있는 일반적인 책 읽기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가 딸을 위해 조립한 것입니다.

그는 이것으로 먼저 초등학생용 학습 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딸에게 짜줬습니다. 그리고 딸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그에 맞는 걸 짜 줬습니다.

딸에게 대학교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까지 짜줬었는데, 대학에 들어간 후에는 딸이 자신의 공부를 알아서 하겠다고 독립선언을 했기에 프로그램 시행을 딸에게 맡겼습니다.

▲정이신 논설위원
▲정이신 논설위원

그가 딸에게 조립해줬던 프로그램으로 대안학교에서 만난 북향민을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반응이 미지근했으나 1년쯤 지나고 나니 북향민 대학생 중에 장학생이 나왔고, 북향민을 위한 수시모집 대학입시에서도 우수대학에 합격하는 학생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는 호기를 부려 남한 학생들에게도 이것을 써봤습니다. 그랬더니 가르쳤던 학생 중에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국어에서 학교 내 과목 수석을 차지하는 학생이 나왔습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대안학교에서 하나님이 만나게 해준 사람 중에 성실과 열의를 갖춘 이들에게 아낌없이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안학교에 다음과 같은 표어를 써 붙였습니다. You are what you read. (네가 읽는 게 너를 만든다.) Readers become Leaders. (책을 읽어야 리더가 될 수 있다.)

그는 대안학교를 운영하면서 칠순을 넘긴 모 소설가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소설가는 '한국의 부모 자식 관계가 세계 최악'이라고 하면서, '과보호·잔소리·체벌이 자녀를 망치는 세 가지 독이고, 사랑·방목·칭찬은 자식을 살리는 세 가지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소설가는 일체의 사교육 없이 독서, 될수록 자녀에게 간섭하지 않는 방목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아이 셋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위에서부터 두 딸과 막내아들을 모두 대한민국의 유명대학에 진학시켰습니다.

그러나 소설가의 의도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그에게 그가 시행한 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자꾸 물어 왔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좋은 대학 진학이 자녀 교육의 최종 성적표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잣대가 아니다'라고 손사래 치며 말을 멈췄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모두 유명대학에 진학했으나, 그것은 순전히 아이들이 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아이들에게 순자(荀子)가 말한 수기지학(修己之學)을 더 중요하게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소설가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예전에 모처에서 과외 강사로 지낼 때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 건물을 몇 채 물려받으면 된다고, 아무 대학이나 졸업장만 있으면 된다고 수업시간에 자꾸 다른 행동을 했었습니다. 그 고등학생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자신의 바람대로 부친에게 건물을 물려받아 금수저로 살고 있을까요.

부모가 가난하면 자녀가 도서관에 가서 책이라도 마음껏 읽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소외 계층일수록 자신의 아이들이 책을 더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하고, 책을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책을 읽는 게 노동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라는 걸 스스로 깨우치게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에 계층 사이의 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아름다운 상상력이 넘실대게 되고, 우리 아이들이 더 아름다운 희망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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