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배 고문·논설위원
▲ 김영배 고문·논설위원

경찰관의 교육과정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경사로 이론’이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작고 사소한 호의(gratuity)도 뇌물인지 호의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사소한 호의도 자주 접하다보면 멈추기 어려운 미끄러운 부패 경사로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이다. 작은 것에서 출발, 큰 돈도 받게 된다. 뇌물은 멈칫거리다가도 한번 받으면 이후부터 쉽게 받게 된다. 도덕적 사고는 사라지고 자기합리화가 일어난다. '자기능력에 대한 정당한 사례이므로 당연히 받아도 된다'는 식이다.

경찰관이 슈퍼마켓 주인에게 음료수나 커피를 얻어먹었다고 하자. 친분이 생기면서 무슨 일이 발생할 때 슈퍼마켓 주인은 자문을 하기도 한다. 부탁을 하기도 하고 뇌물을 줄 수도 있다. 그렇게 시작한 커피 한 잔에서 부패가 진행되고 결국은 파탄을 불러오게 된다.

반론도 있다. 작은 호의는 오랜 관행이고, 대인관계 유지로써 고마움의 표시인데 뭐가 나쁘냐고도 항변한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결과, 즉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수많은 현실적 상황이 문제다. 역대 대통령 자식, 재벌회장, 국회의원, 교육자, 경찰관, 그랜져 검사, 스폰서 검사. 만사형통 차원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과 최근의 최모 변호사 건을 보듯이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청렴법규를 만들고 교육을 해도 별로 소용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문화는 기본적으로 정(情)의 문화다. 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일에 매개로 작용되고, 만연한 부패의 가장 큰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 때 유행했고 지금도 떠도는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위험한 연대의식이 모두 정에서 비롯됐다.

국내 한 방송사가 보도한 프랑스 문화를 보면 그들은 오직 '뇌물이냐, 아니냐'만 구분한다. 공중질서 법규 하나 안 지킨 것도 부정과 부패로 인식하는 국민의식을 조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중질서는 뭉개도 크게 탓하지 않는다. 얼마까지는 '정'이고, 얼마부터는 '뇌물'이라는 밋밋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상식 이하의 개념이 만연돼 있다.

프랑스 고위 관리는 "부패는 늪과 같아서 한 쪽 발만 빠져도 나중엔 머리까지 다 빨려 들어가는 특성 때문에 엄격하게 다룬다"고 했다. 이게 배울 점이 못 된단 말인가. 김영란법도 그렇다. 법이 너무 강해서 서민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하지를 않나, 전 국민이 못 지켜서 범죄인이 된다고 하는 해괴한 논리만 캐낸다. 진정 국가백년대계를 걱정하는 자가 드물다. 부정부패자를 단두대에 세우는 강단이 없다면, 이 나라 강산의 부패로 인한 악취는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다.

최모 변호사의 과다 수임료 문제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패문화가 어디 이뿐이겠는가. 부패 자체를 부패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세태. 심지어 몇 년 전에 소위 강부자, 고소영 등의 말이 유행할 땐 뇌물이든 부정이든 많이 해먹은 사람이 유능한 인물이라서 장ㆍ차관에 임용했을 거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도 회자되지 않았던가. 부패가 만연하고 부패에 절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서 살며 부패에 무뎌진 건 아닌지 심각한 자각이 필요한 때다.

병을 치료할 때 근원을 도려내야지, 지엽적인 치료로 완치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부정부패 근원인 온정주의 문화를 버려야 한다. 냉정을 논하고, 찬양할 때가 됐다. 문화화해서 정착시켜야 한다. 그래야 깨끗한 나라, 안전한 나라가 된다. 온정은 정의와 같은 말이 결코 아니다. '냉정(冷情)'의 문화를 세우자. 공과 사를 구분하는 교육, 어린아이 때부터 몸으로 배워야 '부패의 경사로'에 빠져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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