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는 것은 요란한 행사보다 낫다. 난 불량한 사제. 교회와 기독교에 관한 모든 것을 좋아하기는커녕 그것들로 인해 절망할 때가 많다.

더욱이 의인들만 받아주는 종교클럽의 리더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교회와 신자들의 모임보다 술집에서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 신자, 교도들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하다.

벌써 삼십년 전에 느꼈지만 한국사회에서 똑똑한 이들은 교회를 탈출했고, 그 다음 어제까지 중간치들이 예수로부터 탈출했다. 오늘까지 교회에 남아있는 지식인이 있다면 바보 아니면 천재, 둘 중 하나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처음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이 어릿광대들처럼 예수님을 오해하고, 경솔한 말을 하고, 서로 다투고 제가 먼저라 싸움질 했다. 깨어 있어야 할 때 잠들고 계속해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나랑 동질감이 든다. 루저나 찌질이들로 보이는 그들이 계속 예수를 따른다.

이 사실이 내게 희망을 준다. 예수를 끝까지 따른 이들은 더 이상 밀려갈 데 없는 루저들이었기 때문이다. 잘나고 셈들고 철든 것들은 이미 마음으로 교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 한용걸 성공회 신부·함께걷는 길벗회 이사장
▲ 한용걸 성공회 신부·함께걷는 길벗회 이사장

나는 늘 꿈을 꾸었다. 사람들은 나를 이상주의자라고 했다.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내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 인천에 27년동안 6개의 발달장애인 복지시설을 만들었다.

또 하나 한 일은 통합교육보조원 제도를 2001년 전국 처음으로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관련 몇몇의 단체와 법적 제도화하는 일을 추진했다. 

2004년 법제화되고, 2020년 현재 초·중·고에 있는 교육 보조원들이 바로 그 제도의 산물이다. 왜 이 일을 했냐고 묻는 이 없지만 자문자답한다면 그 시설들이 필요한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그들이 필요하다고 말하기에 했다.

1994년 처음 설립하고 2020년까지 버텨준 매우 중증의 장애인들의 공동체 '섬김의 집'을 건축해 제도권에 진입시키면 된다. 새 건축물은 이미 착공을 했고 가을이면 나의 중증의 가족들은 편하고 멋진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면 된다.

준공된 후 직원들은 가겠지만 나는 그곳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제도권의 복지시설은 사제의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런 반응을 할 줄 모른다. 산과 바다, 꽃과 나무는 반응이 없어도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편히 해준다. 사랑하고 베풀면 기쁘다.

그런데 사랑하고 베풀면서 바라는 게 있으면 괴로움이 발생한다. 즉 괴로움을 갖지 않으려면 보상심리를 내려 놓아야 하는데 그 보상심리를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는 집착하기 때문이다. 내 좋아 하는 일이니 바람과 기대, 대가가 없는 게 당연지사다.

아마도 나는 더 이상 무슨 사업을 하거나 뭔가 수작을 부리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께 매우 불손하며 찬미하는 데 게으르며 인성도 별로지만 어쨌든 나는 사제이다.

산이든, 바다든, 도시의 뒷골목이든 내게 새로운 일을 주신다면 나는 사랑하는 권 여사와 함께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새로운 꿈을 꾼다. 그 꿈의 실현이 내가 죽을 때까지 자신을 비우게 하는 일을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내 평생 찾아 헤메던 하느님의 뜻이 어디 있었는지 그땐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공덕을 입고 이 일을 하며 살아왔다. 이번 생에 진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죽는 날까지 갚아야 한다.

또 꿈을 꾼다. 가난한 이들 속으로 들어가는 꿈. 무슨 무슨 프로젝트 말고 무슨 무슨 계획 말고 내려놓기. 제발로 걸어서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 하느님은 낮은 곳, 가난한 사람들 속에 계신다.

■ 한용걸 성공회 신부 △1982~1991 한신대 철학과 △1991~1993 성공회대 사목신학연구원 △성공회 사제 △1994 인천 송현동 빈민가로 들어감 △함께걷는 길벗회 설립 △2020 사단법인 함께걷는 길벗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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