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고문의 ‘자네, 유럽 가봤나’ <4> 파리

프랑스 파리의 대표적인 명물 에펠탑.

세계 어느 도시든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상징적 장소나 건물이 있다. 그 유명한 에펠탑(Eiffel Tower)에 도착했다. 파리의 랜드마크다 보니 북새통이다. 가이드가 표를 끊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새벽 출동, 표를 입수한 덕에 줄을 서지 않고 승강기를 탔다.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동쪽으로는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 공원을 넘어 앵발리드 돔(Dome des Invalides), 몽파르나스 타워(Tour Montparnasse), 북쪽으로는 센강(Seine River)이 눈에 들어왔다. 오페라 극장과 사크레 쾨르 성당 (Sacred Heart Cathedral)도 보인다. 이 전경과 야경이 환상적이라고 세계인들이 몰려드는 것이 아닐까.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파리까지 중국 관광객들의 떠드는 소리가 귓전을 아프게 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철탑은 1889년 만국박람회장에 설치됐다. 9700t의 철막대 조각과 리벳을 250만개나 사용했다. 건축가 에펠은 전기도 없이 300m가 넘는 철재 조각탑을 구상하고, 어떻게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2년 2개월 5일 만에 완공할 수 있었을까. 감탄에 감탄을 더할 뿐이다.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을 ‘철의 마술사’로 인정한다.

파리 시내 북서부 샤를 드골 광장(Charles de Gaulle Square) 중앙에 자리한 개선문(Triumphal Arch)은 에펠탑과 더불어 파리를 상징하는 대표적 명소다. 개선문 광장은 방사형으로 뻗은 12개의 도로가 별모양을 이루고 있어 ‘에뚜얼(별)광장’이라고 한다.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의 모체라고 하지만 완전 딴판이다. 높이 50m, 폭 45m 크기부터 차원이 다르고 웅장하다.

유럽을 평정한 나폴레옹이 오스테를리츠 대전투(La grande bataille d'Austerlitz)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며, 오스트리아 개선문을 본떠 1808년에 의도적으로 건립했으니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외벽 동서남북에 10개의 부조가 일품이다. 나폴레옹의 승리와 공적이 모티프로 제작됐다. 내부 벽면에는 프랑스 혁명에서 나폴레옹까지 128번의 전쟁과 참전한 장군 558명의 이름이 가득 새겨져 있다. 프랑스를 방문하는 외국 사절에게 꼭 참배토록 한다니 자존심과 국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샹들리제 거리를 달려 슬픈 역사의 현장인 콩코드 광장으로 나왔다. 콩코드 광장에서 프랑스 혁명 때 3만 명 이상 처형했다는 단두대와 첨예하게 솟은 오벨리스크를 보니 소름이 끼친다.

혼란의 프랑스가 눈에 선하다. 오죽했으면 황제를 죽이고, 나폴레옹을 다시 옹립했을까.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프랑스 혁명의 핏물이 세계 민주화에 기여하지 않았을까. 용서만 해서는 악의 씨를 삭근 할 수 없다. 하지만 통제 없는 민주주의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그들이 보여준 것 또한 사실이다.

정답이 뭔지 아리송하다. 골치 아픈 생각을 털고 샹들리제 거리에서 달팽이 요리로 점심을 먹고 드디어 기대했던 세느강 유람선에 올랐다.

프랑스의 주요 건물들은 대부분 세느 강변에 들어서 있다고 한다. 필설로 표현키 어려운 감동적 장면의 연속이다. 웅장한 고딕양식 건물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명배우 안소니 퀸의 ‘노틀담의 곱추’로 유명한 노틀담 성당의 위용은 가히 압도적이다. 조각 한 점 한 점이 예술품이 아닌 게 없다. 파리는 예술의 도시라는 것이 실감난다.

프랑스의 자부심 루브르 박물관(Louvre Museum). 과연 대영박물관, 바티칸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답다. 요새로 지어져 왕궁으로 쓰이다가 박물관이 됐다고 한다. 30만점에 달하는 예술품이 소장돼 있단다. 건물의 규모가 대단해 길 잃은 미아가 될 뻔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그림.

나폴레옹 시절의 초대형 그림들이 많았고 모나리자, 비너스 등의 실물 앞엔 입추여지 없이 인산인해다. 나폴레옹 대관식 그림이 관심을 끈다. 가족사가 그대로 반영되게 그린 모습이 이채롭다. 특히 흔히 비너스의 앞모습만 사진이나 도록으로 봐왔는데 조각상 뒷모습도 감상할 수 있었다. 뒷모습은 엉덩이 부분 외에는 졸작이라고 미술전공자 가이드가 전했다. 그래서 미술작품은 오리지널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한가보다.

비너스 조각상의 뒷 모습.  앞 모습과 달리 엉덩이 옷 부분의 마무리가 덜 돼 있다.

사람들은 광장에 있는 루이 14세의 동상 앞에서 사진 촬영을 많이 했지만, 병인양요 때 우리 문화재 약탈과 그로 인한 작금의 문화재 반환과정이 생각나서 씁쓸했다. 약탈 문화재를 자국에 갖다놓는다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제국주의의 과오가 아닐까.

박물관의 건축물 규모나 인파에 비해 화장실이 적어 매우 불편했다. 유럽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 못해서 길을 물어보는 것도 용이하지 않아 집사람이 불평을 했다.

오후엔 파리 동역에서 열차로 스위스 국경지대 도시 벨포트(Belfort)로 이동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야지대에 유채꽃이 만발했다. 프랑스가 농업국가인 것을 실감했다. 많은 영토를 가지고 있음이 못내 부럽다. <계속>

독일군도 너무 아름다워 폭격을 하지 못했다는 세느강 주변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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