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여 능산리 고분 전경 ⓒ 문화재청
▲ 부여 능산리 고분 전경 ⓒ 문화재청

백제 사비 도읍기의 왕실묘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14호)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끝에 왕릉의 배치와 규모가 확인됐다.

15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백제 후기 능원의 종합적인 학술연구를 위해 능산리 고분군에 대한 중장기 학술조사의 첫 단계로 2014~2019년 묘역 중앙부와 진입부를 대상으로 지하물리탐사를 실시했다.

지하물리탐사는 땅의 물리적 성질 변화를 측정, 땅 속의 구조물이나 매장문화재의 분포를 판단하는 고고과학 기술의 일종이다.

조사에 결과 봉분의 외곽에는 호석으로 판단되는 이상체 반응이 확인됐다. 이를 통해 사비기 백제 왕릉의 봉분은 복원·정비된 지름 20m 규모보다 훨씬 크게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호석은 무덤의 봉분 외곽에 두르는 돌로 고분의 경계를 나타내고 봉토가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탐사결과 왕릉의 배치는 동하총과 중하총, 서상총과 서하총, 중상총과 동상총이 각각 두 기씩 모여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두기씩 모여 있는 것으로 볼 때 왕과 왕비의 무덤이거나 가족단위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사비기 왕릉군으로 백제 능원제도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목돼 왔다.

특히 고분군 서쪽에 있는 능산리 사지(능사)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288호)이 출토된 바 있다.

능사는 능침사찰의 줄임말로 왕릉 주위에 세운 절로 죽은 왕과 왕족의 명복을 비는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 백제 고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1757년 제작된 <여지도서>에 능산으로 표시된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에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조사는 1915년 일본인 구로이타 가쓰미와 세키노 다다시, 1917년 야쓰이 세이이치가 처음 실시했다.

정식보고서도 없이 간단한 설명과 사진 몇 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현재는 1966년 보수공사 중 조사된 7호분과 7기의 고분이 정비돼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부여문화재연구소가 부여박물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능산리 고분군 가운데 동하총(1호분) 내부 관대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다.

이어 능산리 중앙고분군의 전체 시굴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지병목 소장은 "조사를 통해 고분간의 선후관계가 확인된다면 논란이 많았던 사비기 왕릉의 주인과 백제 후기 능원의 모습을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8년 익산 쌍릉(사적 87호)에서 출토된 인골을 연구해 백제 무왕과의 개연성을 확인했다.

2019년에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13호)에 대한 정밀 현황조사와 지하물리탐사를 통해 무령왕릉 주변에 백제 고분이 다수 분포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올해 10월 발간하는 <고고 물리탐사>를 통해 그동안 수행한 백제 주요 고분들의 지하물리탐사 결과를 중점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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