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오후 시작된 산불이 강한 바람으로 속초 시내까지 위협하고 있다. ⓒ 독자 제공
▲ 4일 오후 시작된 산불이 강한 바람으로 속초 시내까지 위협하고 있다. ⓒ 독자 제공

인간을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준다. 크게 화가 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평생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게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불은 신과 인간의 경계없이 소중하다. 그렇게 소중한 불이 때로는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재난을 안겨주기도 한다.

옛말에 불이 지나간 자리는 남는 게 있어도 물이 지나간 자리는 남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물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고를 남기지만 불은 도시, 산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건조한 봄날에 강풍을 타고 일어나는 산불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곤 한다.

강원지역 산불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발생한 산불은 불과 하루 만에 산림 530㏊를 불태우고 600여채의 가옥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산불이 이처럼 순식간에 맹위를 떨친 데는 초속 35.6m에 달하는 강풍이 한몫했다. 거의 '중형태풍'에 맞먹는 바람이다.

도깨비불처럼 이리저리 날아 다닌 산불은 농가와 차량까지 집어삼키며 공포감을 더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 재난이었다.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 김춘만 종합뉴스부장

그러나 강원산불은 예년과 비교해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정부의 기민한 대응이 눈에 띈다. 산불이 확산되자 주저없이 전국적인 총동원령이 내려졌다.

고속도를 통해 강원도로 몰려드는 소방차의 모습은 장관이기까지 했다. 14대의 소방헬기와 522대의 소방차, 162대의 진화차가 동원됐다.

수많은 가용인력이 투입된 산불진화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재난은 망설임없이 속전속결로 대응하는 게 최선임을 알려준 교훈이었다.

중앙재난대책본부를 정점으로 지휘체계가 통일되고 이재민들에게는 신속히 안정을 찾게 해주는 노력도 돋보였다. 일사분란한 지휘체계가 없었다면 이번에도 관할만 다투다 더욱 큰 피해만 남겼을 것이 자명하다.

수학여행중인 평택 현화중학교 학생들의 대응도 칭찬할 만하다. 행사 중이던 리조트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단 3분 만에 모두 버스에 올라타 대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피중에 버스 한 대에 불이 붙자 안전요원지도로 침착하게 내려 다른 버스로 옮겨 타 큰 사고를 막았다. 현화중은 평소에도 재난훈련을 충실히 해온 덕을 톡톡히 봤다고 했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5년전 세월호 사고가 더욱 안타까워졌다. 그때도 이번처럼 통일되고 신속한 지휘체계를 보였다면 그처럼 황망한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재난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중요한건 재난에 대한 대처방식이다. 통일된 재난방지 시스템과 반복된 훈련만이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키워드다.

강원산불은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지방공무원 신분으로는 신속하고 원활한 공조가 어렵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전국 동원령을 내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만이 지역간 소방인력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위급시 신속한 공조를 가능케 한다. 목숨을 걸고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그들에게 국가가 보여주는 최소한의 배려다.

7일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13만이 넘는 국민이 소방관 국가직 전환에 대해 서명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국회가 위기대응 책임자를 붙잡아 놓고, 시급한 법안을 서랍속에서 잠들게 한다면 국민의 신뢰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강원지역 산불로 유명을 달리한 분과 부상자, 그리고 이재민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아울러 투혼을 아끼지 않고 산불진화에 전력을 다한 분들께도 감사를 전한다.

재난은 자연의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재난에 대한 대항은 인간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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