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곳곳 폐비닐·농약병으로 '시름시름'
토양·수질오염, 소각으로 미세먼지 발생
농업인 고령화 가속화에 수거 쉽지 않아
공동집하장도 유명무실 매년 7만톤 방치

▲ 28일 충북 음성 한 농촌마을에 농약병 수거를 위한 집하장이 설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 28일 충북 음성 한 농촌마을에 농약병 수거를 위한 집하장이 설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완연한 봄이다. 농민들은 논과 밭을 갈고 비닐을 덮고 있다. 나물을 캐는 사람도 있다.

평온해 보이는 이면에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 곳이 있다. 후세에 물려 줄 영토가 농약 등 폐기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세이프타임즈>가 29일 농사용 폐비닐과 쓰레기가 제대로 수거되지 않고 방치된 실태를 들여다 봤다.

아름다운 농촌 풍경도 잠시 검은 비닐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에서 얼굴이 찡그러지기도 한다. 밭둑에는 농약병과 쓰레기가 뒤엉켜 있다. 비료 빈포대도 보인다. 모두 영농폐기물이다. 관광지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도시인' 탓으로 돌린다. 농지에 버려지는 폐비닐과 쓰레기는 누구를 원망할까.

전국 대부분 지역에 공동 집하장이 있지만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비어있거나 관리 사각지대가 된지 오래다. 농민의 고령화가 하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자발적인 영농폐기물 수거는 고령화된 농민에게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거리다.

밭 한구석에 모아 놓더라도 마을 공동집하장까지 운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운반차량도, 운반할 일손도 구하기 어렵다. 수거하지 못한 영농폐기물이 농경지 주변에 방치되는 이유다.

봄철 밭두렁을 태우면서 폐기물을 함께 태우는 경우도 있다. 이같은 불법행위는 깨끗해야 할 농촌하늘을 오염시키기도 한다. 산불과 미세먼지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영농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태우기로 인한 산불이 전체의 30∼40%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폐비닐과 빈농약병은 흙속에 묻혀있어 찾기도 쉽지 않다. 오염된 비닐은 재활용도 어렵다. 하천에 방치된 농약병은 더 문제다.

강이나 바다로 흘러가 수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수질도 오염된다.

▲ 28일 충북 음성 농촌 한 밭둑에 빈 농약병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 28일 충북 음성 농촌 한 밭둑에 빈 농약병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충북 음성에서 만난 농업인 김모(50)씨는 "농약병은 도시사람이 버린 것은 아닐텐데 같은 농부로 부끄럽다"며 "여름철 장마가 오기전에 수거해야하는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영농폐기물 수거방식은 마을 공동집하장에 농민이 모아두면 지자체나 민간사업자가 수거하는 방식이다. 지자체마다 농촌환경보전을 위해 묘안을 찾고 있다.

경기 연천군은 공동집하장에 모아둔 영농폐기물을 한국환경공단이나 민간사업자가 수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북 청도군은 재활용품 모으기 경진대회를 열었다. 2000년부터 영농철 농약병 폐비닐이 방치되는 것을 막자는 차원서 시작했다.

전남 해남군은 지난 3월부터 농가에서 보관중인 쓰고 남은 농약을 수집하고 있다. 환경오염과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폐비닐은 ㎏당 90~100원, 농약빈병은 ㎏당 300원을 수거장려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경기양주시설관리공단은 수거보상금 ㎏당 110원을 지급해 자발적인 수거를 유도하고 있다. 충남 청양군은 2017년 영농폐기물 수거자 무상처리 지원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청양군은 농업인이 40%에 달한다.

이밖에 많은 지자체들은 영농폐기물을 수거해 농촌환경을 보존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농민을 지원하고 있다.

▲ 27일 강원 속초시 외옹치항 주변 밭 구석에 폐비닐과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 27일 강원 속초시 외옹치항 주변 밭 구석에 폐비닐과 쓰레기가 방치돼 있다. ⓒ 서경원 기자

농림축산부는 지난해 12월 공모전을 통해 '농촌공동체 창업 아이디어'를 선정했다. 경남 거창 김강진씨가 농촌폐기물 수거사업으로 장려상을 받았다. 김씨는 빈농약병과 폐비닐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는이유가 수거 요청을 해도 업체가 특정한 날에만 수거한다는 것을 알았다.

수거되지 않은 폐기물은 방치하거나 불법소각으로 환경을 오염시켰다. 김씨는 지역 청년들과 폐기물을 직접 수거하기 위해 트럭을 구입했다. 마을단위로 수거하고 군에서 수거보상비를 받았다. '농촌환경도 지키고 청년들은 수거보상비로 소득을 올린다'는 아이디어였다.

법제처 자료를 확인결과 영농폐기물 수거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곳은 5곳이다. 경북도를 비롯해 △전남 신안 △경북 영주 △인천 계양 △충남 청양 등이다. 조례로 영농폐기물 수거자와 집하시설에 수거보상비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폐기물관리법에는 생활폐기물을 지정된 장소가 아닌 곳에 버리거나 매립, 소각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규정하고 있다. 법에는 영농폐기물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6주 동안 8978곳의 농촌마을에서 폐비닐 폐농약용기 등 영농폐기물 1만1100톤을 수거했다. 농촌에서는 매년 32만톤의 폐비닐이 발생하고 있다. 25만톤만이 수거되고 있다. 발생한 폐기물의 75%에 해당한다. 매년 7만톤은 농지에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미수거 폐농약 용기도 연간 7200만개가 발생했다. 79%인 5700만개 정도만 수거됐다. 1500만개의 폐농약용기는 수거되지 않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영농폐기물 수거처리반 사업으로 연간 미수거물량 10.6%, 폐농약 용기는 연간 미수거물량의 44%를 수거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영농폐기물 수거처리 사업을 매년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 27일 대전 동구 천동 한 산책로 주변 텃밭에 폐비닐이 흙속에 덮여 있다. ⓒ 오선이 기자
▲ 27일 대전 동구 천동 한 산책로 주변 텃밭에 폐비닐이 흙속에 덮여 있다. ⓒ 오선이 기자

농민 최모(70)씨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나이가 많아 모아서 운반하기가 어려운데 정부가 수거해준다면 더 신경써서 모아 놓을 것 같다"며 "1회성 사업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책을 하던 김모(54)씨는 "차라리 땅속에 묻거나 태우지만 말았으면 좋겠다"며 "봄만되면 비닐하고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대전 동구 천동에 사는 이모(35)씨는 "산책로 주변에 텃밭이 있는데 근처에 빈 농약병이 많이 보인다"며 "아이가 농약병을 만질까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충북 음성에 사는 농민 김모(56)씨는 "농약이나 농자재는 대부분 농협에서 구매한다"며 "제조업체와 농협이 수거에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지자체별로 제각각인 보상제도도 일원화하고 홍보를 더 하면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 27일 충북 청주 청원구 한 농로옆에 폐비닐이 방치돼 있다. ⓒ 서동명 기자
▲ 27일 충북 청주 청원구 한 농로옆에 폐비닐이 방치돼 있다. ⓒ 서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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