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티소 'Octorber'

▲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 1836~1902), Octorber, 1877년, 캔버스에 유채 ⓒ 몬트리올 현대미술관
▲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 1836~1902), Octorber, 1877년, 캔버스에 유채 ⓒ 몬트리올 현대미술관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나 보다. 막 돌아보는 여인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검은 드레스와 강렬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는 밝고 찬란한 가을의 색채. 절정에 오른 가을이 낙엽으로 분신해 노랗게 또는 붉게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감정을 대신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캐슬린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티소에게 그런 의미였으리라.

이 그림 <10월>을 그린 제임스 티소(James Tissot, 1836~1902)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파리코뮌에 가담했던 후유증을 피해 1871년 영국으로 건너왔지만 상황이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영국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 프랑스 화가다. 역사화를 비롯해 영국 사교계의 인물들을 우아한 일상으로 녹여내며 화사한 색채와 치밀한 묘사력으로 당대 최고의 명성과 부를 얻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기꺼이 영혼을 내어줄 수밖에 없는 순간이 티소에게 찾아왔다. 운명이었다. 느닷없이 날아온 돌멩이 같은 사랑에 티소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캐슬린은 방탕한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를 단 여인이었다. 당시 티소의 수입은 영국 상류층 수준으로 그에게 그림을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였으나, 두 명의 사생아를 낳은 정숙하지 못한 이혼녀와의 추문은 그의 명성에 스크래치를 내기 시작했다.

소문은 빨랐다. 도덕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 암묵적 약속이 지켜지던 시대인지라 그림 주문이 뚝 끊기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분명 캐슬린에게도 변명의 여지가 있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인도 행정청의 외과의사 아이작 뉴턴과 딸을 결혼시킬 욕심에 영국 수도원 학교를 막 마친 캐슬린을 인도로 불러들였다. 수도원에서 갇혀만 지내다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그것도 혼자서 인도로 가는 배를 탄 게 문제의 발단이 됐던 것이다.

아마도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 속 여주인공을 떠올리면 적당할 듯싶다. 피크닉 모자를 쓰고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소녀가 배 난간에 기대어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장면 말이다.

어색한 구두를 신고 한 발을 난간에 올려놓는 순간, 소녀를 바라보는 낯선 시선이 있었다. 늘 꿈꾸던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캐슬린은 그렇게 배에서 처음 만난 바람둥이의 꼬득임을 사랑이라 착각한다.

이 일로 임신을 하게 되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 그녀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남편에게 사실을 털어놓는다.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17살의 순진한 소녀였다는 것, 그것은 면죄부가 되지 못했다.

티소는 자신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캐슬린을 사랑했지만, 둘의 사랑은 길게 가지 못했다. 폐병이 아름다운 미소를 짓던 캐슬린과 티소를 갈라놓는다. 1882년 눈을 감은 캐슬린의 나이 겨우 28살. 6년간의 사랑이었다.

아쉽고 그립고 보고 싶은 마음에 상심이 커진 티소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파리로 돌아간다. 캐슬린이 더 이상 세상에 없음에도 꾸준히 그녀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심령술사를 찾아간 것을 보면 캐슬린을 향한 티소의 사랑이 얼마나 절절했는지 짐작이 간다. 진정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이다.

가을색이 짙어가는 요즘 이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이 무채색으로 변하기 전에 자연이 빛을 발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겨 우리의 일상에 작은 일탈을 결행해봄이 어떤가.

누군가 당신의 이름을 불러 돌아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 조경희 미술팀 전문위원 = 충북대학교 사범대학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한 뒤 동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충북 단양군에서 교편을 잡은 뒤 미술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충북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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