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29명이 사망한 충북 제천 스프츠센터 화재참사가 국민적 '안전 이슈'로 확장되고 있다. 대구지하철 화재사고와 세월호사고, 최근 영흥도 낚싯배사고에서 보듯이 헌법에서 명시한 생명보존에 관한 기본권이 무너지면서 국민적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헌법 제34조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확보할 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지 못하자 국민의 분노로 나타나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분노의 화살'이 소방조직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피해 당사자나 유족이 소방에 분노를 표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전문영역도 아닌 얼치기 정치평론가, 현장을 모르는 이론 중심의 대학교수들이 전문가인냥 출연, 본질에서 벗어난 토론으로 확장된 이슈를 호도하고 있어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언론도 검증되지 않은 비판성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사고현장에 대한 정확한 취재, 소방조직에 대한 팩트체크 없이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경쟁적인 보도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보도는 수의나 다름없는 방화복을 입고 오늘도 불길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소방관의 사기를 저하시키기에 충분하다. '자기방어'라는 정당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상황으로 소방관을 내몰고 있다.

잘못된 여론을 바로잡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재발방지책을 강구해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언론은 팩트체크에 근거한 탐사보도에 주력해야 한다. 화재는 일반적 행정현상이 아닌 과학이자 공학이라는 대전제로 접근하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유독 다양한 사고들이 재난이슈로 확장ㆍ반복되는 것일까. 국가정책을 좌지우지 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국회와 시도지사, 행정안전부 등 행정 관료집단이 문제다.

이들 집단이 입법ㆍ인사ㆍ예산권을 독점적으로 수행하면서 집단 이기주의와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자신들의 안위와 불필요한 조직 확장에만 몰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가 문제다. 입법기능을 통해 집행기관인 소방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도록 지원해야 하지만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ㆍ대응하기 위해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 구축을 위해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하지만 입법의 창이 열리면 국회는 긴급성과 합법성을 외면하고 직무를 해태하고 있다.

국회는 소방청 독립과 정부조직법 개정에서 행정 관료집단의 이기주의를 청산치 못하고 있다. 법과 제도의 근간을 입법화로 적시하는 정책입법 오류를 범했다. 당리당략으로 국회는 공전하고 있다. 소모적인 논쟁을 하면서 잘못된 법령을 바로 잡지 못해 기형적인 행정안전부 재난관리본부를 탄생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재난관리정책관과 재난대응정책관 등은 소방청으로 편입, 최일선 현장에 연계된 시스템이 돼야 국민의 생명을 담보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하는 관련 법은 국회에 계류돼 있거나 심의조차 받지 못하고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손원배 논설위원ㆍ경주대 원자력방재학과 교수
▲ 손원배 논설위원ㆍ경주대 원자력방재학과 교수

국회는 늘 그랬듯이 곧 재해특위를 열어 이번 사고에 대해 소방조직에 책임을 추궁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 분명하다.

국회는 먼저 책임과 의무를 다했는지에 대해 진정 어린 반성부터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모든 재난관리 기능을 소방조직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 탁상행정 관리기능을 최소화하는 '안전적폐' 청산에 나서야 한다. 인력과 조직을 전환해 소방기능을 보완하고 국민을 위한 현장중심의 기능으로 확대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제천참사'는 소방공무원 98% 이상이 지방직 공무원이라는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제복을 착용하는 특정직 공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소방공무원만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돼 있다. 소방조직에 의한 독립적인 소방정책 수행이 불가능하다.

1988년 지방자치단체 사무범위를 정한 개정 지방자치법 제9조는 소방사무를 지방사무로 규정하면서 '지역민방위 및 지방소방에 관한 사무'로 적시하고 있다. 소방을 민방위보다도 정책 후순위에 두는 입법과오를 범했다.

이를 근거로 시ㆍ도지사는 지방분권ㆍ지방자치라는 미명하에 소방공무원의 국가직화를 극구 반대하고 있다. 과연 30여년 전에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든 법이 4차 산업 시대에 국민을 위한 정책집행이 가능하다고 보는지 묻고 싶다. 

제천화재에서 보듯이 정확한 팩트체크 없이 '구조대 지연 출동ㆍ굴절차 고장ㆍ지연 진입' 등의 재난이슈가 발생되는 근본적 원인을 진단하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소방서 구조대는 불과 10여명으로 3개조로 운영된다. 1일 근무 인원은 4~5명에 불과하다. 1일 출동은 20~30건 이상으로 동시다발적 사고가 발생하면 공백기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굴절사다리차나 고가사다리차 역시 소방서에 1대씩 배치되기에 동시다발적 사고나 고장 때 제대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시ㆍ도지사의 소방에 대한 인식정도에 따라 인력과 장비가 운영된다는 점도 문제다. 그들은 지방재정여건상 국가 교부금으로 '연명'하면서 목적에 반하는 행정 치적이나 일반행정 운영에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국민은 어느 지역에서 사고를 당하느냐에 따라 헌법이 규정한 소방서비스를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제공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ㆍ도지사는 재난환경 변화와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에 반해 소방에 대한 인사권과 예산권을 틀어쥐고 있다.

국민은 그들에게 이같은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시ㆍ도지사협의회라는 정책공동체를 방폐 삼아 편협된 재난 정책적 사고에 근거해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에 결사반대하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 바로 적폐다.

재난에 대한 정책적 인식변화가 없다면 제2의 촛불집회 지향점은 그들을 향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방사무를 소방조직이 행할 수 있는 소방독립이 급선무다. 인력과 예산, 조직설계에 대한 독립을 의미한다.

제천화재 사고를 계기로 재발방지와 현장에서 작동하는 국민보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국회, 행안부, 시도지사는 법과 제도를 보완하는 데 팔을 걷어야 한다.

법으로 강제하기 앞서 국민 스스로 안전확보를 위한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개인과 집단 이기주의를 버리는 안전의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글로벌화한 세계화 속에서 '안전정의'가 바로 선 대한민국이 건설되기를 기대한다.

■ 손원배 논설위원ㆍ경주대 원자력방재학과 교수(행정학박사ㆍ소방재난정책 전공)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소방공무원 △인천대 위기관리연구센터 연구원 △인천대 행정대학원 위기관리학과 외래교수 △한국민방위재난관리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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