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 'No.31'

▲ 잭슨 폴록, '작품 No. 31', 캔버스에 유채와 에나멜, 269.5x530.8㎝, 1950 ⓒ 뉴욕현대미술관
▲ 잭슨 폴록의 작품 'No.31', 캔버스에 유채와 에나멜, 269.5x530.8㎝, 1950 ⓒ 뉴욕현대미술관

"어떻게 이런 그림이 예술이고, 왜 비싼 그림이라는 거지?" 

"나도 그리겠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미국, 1912~1956)의 작품을 보면 이렇게 말하기 쉽다.

그는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의 영향을 받아 커다란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 물감을 흘리고 튀기며 쏟아 부었다. 물감자국을 통해 온몸으로 자신의 궤적을 표현한 '액션 페인팅'을 선보여 화단의 주목을 받는다.

그가 오늘날의 명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을 보여주는 그의 표현기법이 미술사적 의의가 크다는 것. 하지만 무명이었던 그가 그토록 단기간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거기에는 세계대전 못지않은 유럽과 미국의 치열한 문화전쟁의 내막이 숨어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CIA까지 동원하며 폴록의 그림을 전략적으로 후원한 걸까?

어디를 봐야할지 모르는 그림. 화면 어디에도 주인공이나 포인트가 없다. 오직 물감자국으로 전체를 균질하게 표현하는 '올 오버 페인팅' 기법은 캔버스의 모든 공간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나치즘을 비롯한 전체주의에 억눌렸던 개인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곳, 누구에게나 기회가 제공되는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땅, 이른바 '드림 아메리카'가 그의 작품에 구현된 것이다.

추상표현주의 미술은 2차례의 세계대전 소용돌이와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피해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화가들과 미국 출신의 화가들이 함께 창안한 미술 사조. 내면을 표현하되 지극히 추상적으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폴록의 그림은 여기에 가장 미국적인 가치를 화폭에 더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지만 여전히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을 버리지 못한다. 미국과 소련으로 양극화 된 냉전시대에 미국이 자본주의의 수장으로서 체제의 우월성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의 패권국이 되는 길, 그것은 문화적 우월성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야망을 획득할 프로젝트가 시작됐고 폴록의 작품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의 작품은 유럽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사회주의 이념과 고리타분한 아카데미즘에 대적할 미국의 '신무기'로 간택받기에 충분했다. 지극히 미국적인 미술로 재해석됐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히 갈렸지만, 미국의 결심은 단호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금세기미술화랑 등 대형미술관과 비평가들의 공조는 물론 CIA와 정부조직까지 깊숙이 개입한 '작전'이 시작됐다. 미국의 모던아트를 유럽에 선진적인 개념으로 홍보하는 전략은 보이지 않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록펠러를 비롯한 대부호들까지 동원, 당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가격으로 폴록의 그림을 대량으로 사들인다. 미술시장에 일대의 파란이 일었다. 세기의 주목을 받으며 순식간에 현대미술의 황태자로 등극한 폴록. 그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예술의 수도'를 파리에서 뉴욕으로 '천도'시키는 데 성공한 미국은 뉴욕을 현대미술의 메카로 만들며 '문화전쟁'에서 승리한다. 드디어 미국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서도 글로벌 리더가 되며 명실상부한 세계의 패권국이 되는 순간이다.

액션페인팅으로 신개념을 표현한 천재 화가 잭슨 폴록, 그는 이렇게 시대적 요청에 의해 운명적으로 미국 미술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작가가 됐다. 물론 폴록의 그림을 2500점 이상 사들인 록펠러는 '투자의 귀재'라는 명성에 걸맞게 막대한 이득을 보았음은 안 봐도 훤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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