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만 분쟁과 재해를 피하고자 유럽으로 이동한 난민과 이주자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에볼라·메르스 등 전염병과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에 의한 테러 사건도 잇따라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런 재난 사건은 물리적·물질적 피해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에도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세계 각국의 구호기관은 1990년대부터 재난을 겪은 이들의 '마음의 상처'에 눈을 돌리고, 이들을 위한 심리·사회적 지원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심리 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재난 피해자를 위한 심리 치료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1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재난 시 심리·사회적 지원 국제 워크숍'도 마음의 고통을 겪는 재난 피해자를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국내에서 재난 심리 치료를 주제로 대규모 워크숍이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가 주최한 이날 워크숍에는 국내외 전문가 300여 명이 참여해 관련 정책과 사례를 공유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에 나선 참가자들은 재난 피해자의 심리·사회적 지원을 위해서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배정이 부산시 재난심리지원센터장은 "기존 물질 보상 위주의 재난 관리 시스템은 피해자의 심리 충격 치유를 도외시해 사회 병리현상과 막대한 간접비용을 발생시킨다"며 "소외받는 개인 없이 재난을 함께 극복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제트라우마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인 잭 사울 박사는 "커뮤니티의 회복력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회복을 위한 토대로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집단적 치유 의식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9·11 피해자를 위한 심리 치료에 참여했던 사울 박사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피해 지역의 학교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부모 간 토론을 진행하고, 교육용 동영상을 제작해 배포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가족 및 커뮤니티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며 "단계별로 커뮤니티가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고립되고 취약한 개인을 돌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정식 안산온마음센터 가족심리지원팀장은 "세월호와 같은 큰 사건이 있은 뒤 상실을 인정하는 애도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세월호 청문회 당시 오열하는 유가족을 폄훼하는 것은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기반의 회복 프로그램이 진행돼야 하며 공동체를 중심으로 예술과 콘텐츠 제작 활동 등을 통해 피해자와 일반 시민이 만나 심리적 지지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지역 공동체와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개인이 소외당하는 것을 막고, 피해자가 아닌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느껴지도록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미형 IOM 한국대표부 소장은 "심리·사회적 지원은 피해자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해 새로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고, 사회의 회복력 증진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워크숍은 20일까지 이어진다. 20일에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을 놓고 소규모 토론이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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