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입니다. 춥습니다.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먼저 추위를 생각합니다. 올해처럼 평년보다 더 추울 것이라고 예보가 돼 있거나, 급작스런 추위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누구든지 두꺼운 옷과 이불로 추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추우니까 몸이 움츠러들고, 움츠러든 몸으로 추위를 먼저 잊을 수 있는 것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겨울이 되면 추위에 눌려 다른 생각도 잘 못하게 되고, 사람들의 관심은 주로 추위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에 쏠리게 됩니다. 

겨울이 되었을 때에도 따스한 봄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순히 스키장이나 눈썰매장 같은 곳에 가서 겨울을 즐기며 다가올 봄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봄을 보는, 차가운 겨울을 넘어서 생명력 넘치는 따스한 봄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어붙은 대지 속에서 약동하며 꿈틀대는 생명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일반적으로 도인(道人)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들을 신앙인(信仰人)이라고 부릅니다. 

신앙인이란 그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지, 어떤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든지 겨울에도 겨울 뒤에서, 겨울을 넘어오시는 봄을 보는,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텅 빈 들판에서 호흡을 고르며 쉬고 있는 땅 속의 풀과 숲의 나무를 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다가오는 봄을 보지 못하면 신앙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앙인이 신앙인다운 눈을 갖고 있지 않으면, 우리에게 겨울 넘어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식들을 전해주는 이들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인간 사회에는 봄소식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한 뼘 더 나아가 제가 믿는 기독교에서는 이 봄을 부활에 빗대어 설명하곤 합니다. 기독교인이면서 부활을 보지 못하면 그건 겨울에 눌려 봄의 기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의 슬픔에 눌려 열 개의 기쁨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이신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겨울이 왔다고 겨울만 보고 추위를 넘어가기 위해서만 애를 쓸 것인지, 겨울 뒤에 있는 봄을 바라보며 봄에 이뤄질 생명의 행진을 준비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선택입니다. 하나의 슬픔에 눌려 열 개의 기쁨을 놓치며 살 것인지, 열 개의 슬픔을 하나의 기쁨으로 극복할 것인지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은 세속에 염증을 내고 초월에서 길을 찾는 현실 도피적인 제반 경향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내 안에 이미 주어져 있는 신령한 몸의 씨앗을 통해 봄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비하신 그 신령한 몸의 한 지체인 눈이 있습니까? 신령한 뇌(腦)만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만 있으면 생각만 할 뿐입니다. 신령한 뇌와 더불어 신령한 눈이 있어야 하고, 봄을 껴안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신령한 몸이 있어야 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ㆍ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한국독립교회 및 선교단체 연합회 목사 안수 △아나돗학교 대표간사ㆍ아나돗 공동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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