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 전과가 있는 보험설계사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도 관련 법령이 미비한 탓에 수년 동안 버젓이 영업을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황운하 의원(더불어민주당·대전 중구)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험사기 유죄판결 이후 검사·제재·청문 등 과정을 거치는 데 일반적으로 1~2년 이상이 소요되며 설계사는 처분 완료 때까지 보험 영업이 가능하다.

보험업법은 보험업법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해 벌금 이상의 형을 받거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 설계사 자격을 박탈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험사기 유죄가 입증된 설계사들을 퇴출하기 위한 제도지만 정작 대부분의 보험사기 처벌규정을 담은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법조문에서 빠져있어 조항 자체가 유명무실한 상태다.

보험업법은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금전을 제공하는 등 극히 일부 범법행위만 금지하고 있을 뿐 피해 상황을 조작·과장해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가는 사기 행각에 대한 처벌규정은 모두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에 담겨 있다. 결국 현행법으로는 보험사기 유죄판결로 설계사 자격을 박탈할 수 없는 것이다.

제도가 미비한 탓에 금융당국은 유죄판결을 받은 설계사에 대해 추가로 행정조사·처벌을 행한 뒤에야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1~2년이 소요되는 행정처벌이 완료된 후에도 설계사가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면 자격 박탈까지는 수년이 더 걸린다.

보험사기로 형사처벌을 받은 뒤 금융당국의 행정처벌 절차까지 밟는 사례는 생명·손해보험협회 각각 연간 100여건에 달한다.

일각에선 사기 행각을 벌인 설계사들에 대한 자격 박탈이 늦어진 까닭에 전과자들이 버젓이 영업할 시간을 마련해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황 의원은 "사기 전과자들이 이 기간에 추가 사기 행각을 벌일 우려가 크고 법원에 의해 범죄 사실이 객관적으로 증명됐는데도 동일한 사실을 놓고 조사·제재에 나서 행정력까지 낭비되고 있다"며 "관련 법령을 개선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땜질식 처방만 반복해온 셈"이라고 지적했다.

사기 행각이 주로 벌어지는 실손보험은 대부분 보험사의 보험금 지출에 따라 보험료 수입을 조정하는 조항이 약관에 담겨 있다. 보험사기를 방치했을 때 일반적인 보험가입자의 보험료까지 증가할 수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보험설계사 자격을 관리하는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협회 관계자는 사기 전과가 있는 설계사의 등록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설계사에게 등록신청인 고지사항을 배포한 후 설계사가 스스로 해당사항이 없다고 표기하는 경우 추가 확인 없이 보험설계사 등록을 진행한다"며 "관련법상 확인하기 어려운 정보가 많고 보험설계사 자격을 검증하려면 상당 시일이 소요되므로 빠른 처리를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과 설계사들이 보험시장을 활보하는 와중에 양 협회는 설계사 등록 관리 수수료로 수십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두 협회가 황 의원실에 제출한 '보험설계사 등록 현황'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생보협회는 117만9666명, 손보협회는 119만6219명의 보험설계사를 등록했다. 생보협회는 설계사 등록비용으로 80억8000만원, 손보협회는 71억8000만원을 벌어들였다.

황 의원은 이러한 제도상 허점을 정비하기 위해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을 자격 박탈 사유에 추가하고, 처벌 사실이 관계기관에 즉각 공유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황운하 의원은 "국회와 금융당국이 전방위적으로 노력하는데도 보험사기 건수와 금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위법자가 보험설계사로 등록하지 못하도록 보험업법 개정 등 관련 절차를 정비해 문제점을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