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북향민 중에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어떤 과목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국어만 가르쳐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었다가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대학입학 자격을 얻기 위한 실력을 북향민에게 짧은 시간에 만들라고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향민을 가르치면서 알음알음으로 북한의 교육제도와 그곳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이 어떤 건지 물었습니다. 이들이 그동안 뭘 배웠고 어떻게 자아정체성을 형성했는지 알아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제가 알고 있었던 한반도 반쪽에 관한 자료와 꽤 달랐습니다. 북한은 많이 변해 있었고 제가 만난 북향민에게서도 그걸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대학입시에 제대로 대응하도록 새로운 교과목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북향민을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모든 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가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제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대학입학 후에도 계속 공부를 잘하기 위한 대학생용 학습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랬더니 대학을 다니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바람과 같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지는 제자들이 줄어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대학 졸업 후에 이혼을 고민하거나 가정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 제자들도 생겨났습니다. 이들을 위해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대학 졸업 후 원하는 직장에 취직해서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바람직한 사회인으로 자리 잡은 제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만든 교과목이 인문학콘서트입니다.

북향민에게 국어, 독서, 한자, 한국사, 글쓰기, 자기소개서 쓰는 법, 대입·취업 면접법 등을 통합해서 가르쳤는데 이걸 한 마디로 뭉뚱그려 인문학콘서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인문학콘서트를 가르친다고 하면 뭘 가르치는지 물었던 상대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가르치는 인문학콘서트라는 과목이 아주 낯설었던 모양입니다. 또 북향민에게 이 과목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며 모 라디오 방송사에서 저희를 취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녔던 학교의 언론매체 동아리에서 독서·논술·글쓰기를 강의해 달라는 딸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대학생들에게 이걸 강의했습니다. 그때 인문학콘서트를 대체한 교과목의 이름을 '독서 및 논리 추론, 글쓰기'라고 지었습니다. 인문학콘서트를 가르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고 제가 가르치는 게 수준 높은 인문학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딸의 요청으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교과목의 이름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교과목의 이름을 바꾸자 어떤 사람이 '독서도 가르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독서를 교과목으로 선정한 이유를 설명해줬습니다. 북향민과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책 읽는 법도 알려줘야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꽤 우수하다는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문해력을 향상하기 위한 효과적인 독서법에 관해서는 몽매한 이가 많았습니다.

요즘 대안학교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오면 낭독·속독·윤독·정독·지독 중 어느 게 최우선으로 필요한지 진단을 내려 그에게 효과적인 독서법을 먼저 가르쳐 줍니다. 자신의 눈으로 책을 읽어내야 생각을 바로 세울 수 있기에 이것부터 가르칩니다. 또 '강일독경(剛日讀經) 유일독사(柔日讀史), 강한 날에는 경전을 읽고 부드러운 날에는 역사책을 읽는다'라고 했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는 책을 고르는 법도 가르칩니다. 텍스트를 고를 줄 모르면 헛공부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찾아온 사람 모두에게 자신이 읽어야 할 텍스트를 선별하는 힘을 기르게 합니다.

저희가 가르치는 교과목의 내용과 목차를 만드느라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뭘 가르치느냐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만든 이 교과목을 자라나는 한반도의 모든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건 저희만의 욕심일까요.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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