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 오지은 전문위원·변호사

일반적인 손해배상청구 사안에서 원고의 부담은 크다. 가해자를 피고로 지정하고, 가해행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더 힘든 부분은 각 가해행위가 어떻게 손해로 이어졌는지 인과관계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의료사고와 관련되는 손해배상사건이라면 더욱 어렵다. 의료와 같은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이 원칙만이 항상 기계적으로 적용된다면 실질적인 손해배상을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판결에서는 "증상 발생에 관해 의료상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이 증명되면 그와 같은 증상이 의료상 과실에 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법리(2010다57787 등)을 적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판례를 소개한다.

망인은 2017년 6월 6일 독극물을 복용으로 피고병원에 입원했다. 피고병원 의료진은 망인이 입원 다음 날 산소포화도가 저하되고 기도 분비물이 증가하자 기관내 삽관을 시행한 후 중환자실로 옮겼다.

망인은 2017년 6월 17일 오후 3시경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으며 산소포화도가 100%였다. 그러던 중 같은 날 35분경 불편감과 답답함을 호소했다. 피고병원 의료진은 기관내관의 개방성이 약하고 산소포화도가 90%까지 저하되며 기관내관의 가래를 뽑을 때 저항감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했다.

피고병원 의료진은 오후 3시 37분경 기관내관을 제거한 뒤, 41분경 망인에게 진정마취제와 근이완제 등을 투여하고 55분경 기관 내 삽관을 시도(1차)했으나 실패했다. 오후 4시경 기관내 삽관을 다시 시도(2차)했으나 실패했고, 17분경 성공했으나 25분경 기관내관의 공기주머니가 터져있는 것이 발견돼 27분경 기관내관을 제거했다가 28분경 다시 기관내 삽관(3차)를 시행했다.

망인의 산소포화도는 오후 3시 41분경 100%, 43분경 90%이었고, 이후 분경 72%까지 계속 저하되다가 오후 4시 24분경 94%, 28분경 100%로 회복됐다.

망인이 2일 후 시행한 뇌 MRI 검사 상 저산소성 뇌손상이 확인됐고 망인은 깨어나지 못한 채 혼수상태로 있다가 2019년 2월 10일 사망했다.

법원은 피고병원 의료진이 사건 당일 오후 3시 37분경 망인의 기관내관을 제거한 뒤 18분이 지나서야(55분경) 최초로 기관내 삽관을 시도한 점, 오후 4시경 기관 내 삽관이 재실패 후에도 다른 술기를 시도하지 않은 점, 결국 17분경 기관내삽관이 시행될 때까지 40분이 경과된 점을 토대로, 망인에 대한 산소공급을 지연시킨 과실을 인정했다.

또한 망인에게 이 사건 전까지 뇌손상이 없었던 점, 기관내관 제거 후 40분간 산소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산소포화도가 72%까지 떨어진 점 등에 주목했다.

따라서 법원은 피고병원 의료진의 의료과실과 망인의 저산소성 뇌손상과 그로 인한 사망 사이에 다른 원인이 게재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과실로 인한 악결과임이 추정된다고 설시했다(2019가합104288).

의료진의 환자에 대한 채무는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다.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거나 낫게 하지 못한다고 해 언제나 책임지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에서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를 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의료사건은 의료진에게도, 환자에게도,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에게도 항상 어렵고 무겁다.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근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심사관 역임 △경찰수사연수원 교수 △질병관리청·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질병관리청·대한간호협회·서울시간호사회·조산협회·보건교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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