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난치병을 앓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병원 저 병원, 유명하다는 병원을 다 돌아다니며 치료받았지만, 병이 잘 낫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에게 어떤 사람이 간판도 없는 조그마한 병원을 알려주면서 거기를 한번 가보라고 했습니다. 간판도 없는 병원이니 그냥 속는 셈 치고 한 번 들려 봤습니다. 그랬는데 덜컥 병이 나아 버렸습니다.

이런 병원이 왜 간판도 달지 않고, 인터넷으로 홍보도 하지 않고 있는지 궁금했던 그가 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병원이 왜 이렇게 숨어서 지내요?"

그러자 병원에 있는 의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땅속에서 뿌리로 사는 자유가 너무 좋아서요."

그 병원에서 난치병을 고친 이가 병원의 행적에 감동해서 자기가 병이 나은 사연을 글로 썼습니다. 저는 이런 게 '종교 경전'이라고 봅니다.

철학자는 본인이 직접 자기 생각을 글로 씁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제자가 써놓고 그가 쓴 글이라고 한 것도 있지만, 그런 건 아주 적습니다.

본인의 생각을 직접 써야 확실합니다. 이런 철학자에게는 그의 사상을 지지하는 사람이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와서 더불어 한 세상을 같이 지냅니다.

아니면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칼 융의 관계처럼 처음에는 그를 지지했으나, 이후 다른 생각을 품게 돼 그를 떠난 제자도 생겨납니다.

종교 지도자 중에는 본인이 직접 자기 생각을 글로 쓴 사람이 적습니다. 종교학에서 고등종교로 분류한 종교는 대부분 창교자의 언행을 후대가 기록했습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그가 아름다운 스승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각성한 후 그의 언행이 인류의 아름다운 보고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어록을 채록해 종교 경전으로 남겼습니다.

이 과정을 식물에 빗대 보겠습니다. 땅에 심은 식물의 씨앗은 뿌리내리는 걸 시작으로 줄기가 뻗치고, 줄기는 점점 자라서 잎사귀와 꽃봉오리를 해 아래에서 펴냅니다. 그리고 식물은 이렇게 뿌리와 줄기가 연계해서 꽃 한 송이를 완성합니다.

이 꽃을 거시적 관점으로 보면 뿌리, 줄기, 잎, 꽃봉오리는 다른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유기체입니다. 그러나 뿌리는 빛을 받지 못하는 흙 속에 있고 줄기, 잎, 꽃봉오리는 태양을 벗 삼아 공기 중에 있습니다. 동물과 달리 이들은 협력하며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한 몸이 돼서 해야 할 일을 합니다.

이때 뿌리가 땅속에만 있기 싫다고 땅 밖으로 나와서 걸어 다니면 줄기, 잎, 꽃봉오리가 생겨날 수 없습니다. 꽃봉오리가 자기처럼 날아다니는 나비를 친구로 둔 게 아니라, 땅속에서 꾸무럭거리는 벌레들과 같이 사는 뿌리가 싫다면서,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받지 않고 태양을 통한 광합성으로만 연명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꽃이 피지 않습니다.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꽃이 피려면 뿌리가 땅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무게 중심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꽃이 바람에 흔들릴지언정 줄기가 꺾이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들이 직접 글을 쓰지 않았지만, 제자들이 감동해서 그들의 언행을 기록한 인류의 스승들은 땅속에서 생존 감각의 균형을 잡아주는 뿌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세상과 인간을 인(仁)과 서(恕)로 사랑했으나, 불인(不仁)한 세상과 관용을 모르는 인간들에게 버려졌기에 성공한, 후학들에 의해 성공하도록 이끌어진 공자(孔子)를 만났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공자를 만나면, 그에 관한 논쟁은 잠시 뒤로 밀어 두고 인간 공자를 배우십시오.

예수님은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됐다고 했습니다(마태복음 21:42). 사울에게 쫓겼던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됐다고 노래했었는데,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이 노래를 인용했습니다.

두 분의 행적을 보면서 세상이 성공하도록 그를 원했기에, 한때는 버려졌으나 다시 사표가 된 귀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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