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천문가 김동훈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 대한민국 최고의 아마추어천문가로 불리는 김동훈작가가 "별은 사랑을 말한지 않는다"를 출판했다. ⓒ 어바웃어북
▲ 대한민국 최고의 아마추어천문가로 통하는 김동훈 작가의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 어바웃어북

바이러스가 일상을 집어삼킨 지 3년째. 분주히 움직이던 세상을 향해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자, 미세먼지로 뿌옇던 하늘이 맑아졌다.

인공불빛의 위세가 약해지고 맑아진 밤하늘에는 종전보다 많은 별이 찾아왔다. 어두운 밤하늘을 찾아다니며 별과 눈 맞추는 데 매료된 이들은, 이 고요한 즐거움을 '별멍'이라고 명명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마추어천문가로 통하는 김동훈 작가가 <별은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어바웃어북·448쪽)를 출간했다. 세상사에 찌든 시민들이 밤하늘을 한번 쳐다 볼 여유를 갖도록 해 주는 책이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밤하늘을 보며 '넋 놓기'를 권유하는 책이다.

하늘 가득 펼쳐진 은하수 커튼, 화려한 빛의 춤사위 오로라, 달이 해를 품는 일식의 장엄한 순간,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작은 점 지구, 138억년을 거슬러 만난 우주의 심연. 매혹적인 천체사진은 과학지식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나'라는 소우주를 소환한다.

그리고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준다.

"별 먼지에서 태어난 우리는 모두 반짝이는 별이다."

별을 알아가며 얻은 지식과 영감은 자신을 이해하는 길을 열어준다.

어두운 밤하늘과 광활한 우주를 200여 장의 사진으로 큐레이션한 저자는 오랜 별지기다. 그는 초등학생 때 월간지 사은품으로 천체망원경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별을 동경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조악한 천체망원경이었지만, 덕분에 밤을 기다리고 가슴에 우주를 품었다. 별이 가장 잘 보이는 하늘을 좇아 호주, 몽골, 남미, 북유럽 등 세계를 여행했다. 별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길 비는 사람이다. 

등산이라면 질색이다. 그러나 관측을 위해서라면 어떤 산도 기쁘게 오른다.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해발 4000m 고원을 찾았을 때는 고산병으로 심하게 고생했지만, 천문 이벤트가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비행기 표를 끊는다.

"산에 오르기 전에 숨을 고를 겸 그 아래 설치된 캠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어둠이 내려오자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의 난로 연통 위로 마치 연기처럼 은하수가 피어올랐다."

이곳은 우주와 지상의 기운이 만나는 접점이구나! 별빛이 두 눈으로 쉴 새 없이 뛰어드는 통에 별이 모두 물러날 때까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솔롱고스(Solongos)에서 온 이방인의 소원은 불면의 밤이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22쪽, '불면의 밤' 중에서)

"니오와이즈 혜성처럼 맨눈으로 긴 꼬리를 볼 수 있는 혜성은 몇십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 만큼 귀하다. 카메라를 챙겨 강원도 평창 청옥산으로 향했다. 산에 오르기 전에 다시 일기예보를 확인했지만, 관측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번에 놓치면 자그마치 6800년을 기다려야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기회는 적은 확률을 붙들고 한여름에 해발 1256m 산을 오를 충분한 이유가 됐다. 그날 저녁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번 생에 다시 만날 수 없는 혜성을 보았다." (19쪽, '일생에 단 한 번' 중에서)

▲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만난 니오와이즈 혜성 ⓒ 김동훈
▲ 청옥산 육백마지기에서 만난 니오와이즈 혜성. ⓒ 김동훈 작가

별빛을 좇는 저자의 여정은 울림이 크다. 그는 사랑해 마지않는 별에 돈과 시간 어느 것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며 휴가를 이어 붙여 관측 일정을 확보하고, 경비는 전액 월급을 아껴 마련한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몇 번이나 코앞에 두고도 가보지 않았다. 여행의 목적이 '별', 그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그의 일정표는 일상에서 해야 할 일 대신 밤에 관람한 천체들로 빼곡하다.

저자는 책에 밑줄을 긋는 것처럼 사랑하는 밤하늘에 밑줄을 그었다. 떠나보내기 아쉬운 밤, 이야기 나누고 싶은 밤, 기억하고 싶은 밤. 오랜 별지기의 안목이 깃든 밑줄은, 광막한 우주의 이정표가 되어 초보 여행자를 이끈다.

별은 응시하는 사람에 따라 시, 노래, 그림, 과학이 된다. 별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노크하는 특별한 대상이다. 그래서 가만히 별과 눈 맞추는 시간은 과학적이고 감성적인 넋 놓기다.

저자는 고르고 고른 밤하늘 사진에 과학적 설명과 사유를 담아 주석을 붙였다. 사진 안에 담긴 과학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어느새 우주는 복잡하고 어려운 대상으로 바뀌어, 오히려 멀어져 간다.

그래서 과학 이야기는 일상 언어로 쉽게 풀고, 별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담았다. 별은 그냥 보아도 좋지만, 의미를 알고 보면 감동의 진폭이 더 커진다.

▲ 남산 타워와 정월 대보름달 ⓒ 김동훈
▲ 남산 타워와 정월 대보름달. ⓒ 김동훈 작가

일상에 발이 묶여 도시를 벗어나기 힘든 사람들은, 도시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들 무엇을 볼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할지 모른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은 아니지만 분명 도시 하늘에서도 별을 볼 수 있다.

아파트 숲을 배경으로 둥글게 도는 별(29쪽), 여의도 하늘에 나타난 금성 엄폐(121쪽), 남산타워 뒤로 떠오른 거대한 정월 대보름달(47쪽), 123층 롯데월드타워 위를 빠르게 지나며 솟구치는 태양(333쪽) 등. 저자는 우리가 놓친 도시의 하늘을 포착해냄으로써, 도시에서는 별이 보이지 않는다는 편견을 깬다.

설원에 누워 오로라 보기, 지평선 끝까지 내려온 은하수 아래에서 밤새 이야기 나누기, 우주 한가운데 서 있다고 믿을 만큼 순도 높은 암흑 속에서 절대 고독 경험하기 등. 별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온몸으로 우주를 느끼는 경험은 모두의 바람이다.

저자는 직접 찍은 천체사진을 통해 별과 우주를 1열에서 관람하며 느낀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별과 눈 맞추는 시간만큼 하루를 마감하는 완벽한 마침표가 또 있을까? 삶에 별빛이 스며들 수 있도록 밤하늘과 함께하는 과학적이고 감상적인 넋 놓기를 시작해보자.

◇ 저자 김동훈 = 연세대 기계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천문연구원 주최 제25회 천체사진 공모전 최우수상을 비롯해 동공모전에서 다수 수상했다. 2021년에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주최한 제2회 스마트폰 천체사진 공모전 심사위원을 맡았으며, 전시회를 통해 아름다운 우주 풍경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새로운 설렘을 느끼고 있다. 지은 책으로  <풀코스 별자리여행> (공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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