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중 남은 사람들에게(의료인, 환자 모두를 포함한다) 가장 큰 상처가 되는 건 마취제 투여 후 발생한 사고다. 검사 혹은 수술(시술)을 하기 위해 진정마취제 등을 투여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같은 마취사고라 하더라도 사실관계에 따라 과실유무가 달라진다. 의료적인 예후도, 법적인 책임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다는 점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만 사건마다 따로 상담하고 검토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결과를 미리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변호사는 대리인일 뿐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의료사건은 적지 않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마취사고에 관해 민사책임을 인정한 판례를 소개한다(2017나10359). 피고병원 의료진은 환자에게 뇌수술을 시행한 후 뇌영상검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미다졸람(최면진정제)을 두 차례, 프로포폴(전신마취제)를 한 차례 투여하고 검사를 실시했는데 당시 환자의 활력징후를 기록한 관찰기록지는 없다.
환자는 갑자기 청색증과 호흡저하, 심정지를 보였고, 피고병원 의료진이 기관내삽관과 심장마사지 등 필요한 처치를 했다. 환자의 심장박동은 돌아왔으나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망인)은 보존적치료를 10개월 정도 받다가 사망했다.
하급심 법원들은 피고병원 의료진들이 활력징후 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을 인정했다. 이를 판단함에 있어서 망인이 미다졸람과 프로포폴을 투약받기 전에 호흡과 심장박동 등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점을 고려했다.
법원은 이 사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을 단시간에 여러 차례 투약된 진정·마취약물로 인한 부작용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피고병원 의료진이 망인의 활력징후 관찰을 소홀히 한 과실을 인정했다.
피고병원 의료진의 응급조치는 적절하였더라도, 위 약물들의 부작용에 대비해 망인의 활력징후를 자세히 관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망인에게 발생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거나 도중에 약물 투여를 중단함으로써 부작용 발생을 억제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안타까운 만큼 마취사고에 관해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다. 의사의 진료계약상 채무는 결과채무가 아닌 수단채무다. 진료과정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다면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고, 낫지 못했다고 의사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실이 인정된다고 법적 책임이 곧바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과실은 손해배상책임의 요건일 뿐, 그러한 과실이 어떻게 악결과로 이어졌는지 입증하는 것이 환자측의 몫이다.
여러 가지 판례나 사안이 있다 하더라도 내 사건이 그 적용을 받기 위해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그에 관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니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밝히려면 환자측도 최선을 다해 입증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 오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 △서울대 간호대 졸업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서울대병원 외과계중환자실(SICU) 근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사관, 심사관 역임 △경찰수사연수원 보건의료범죄수사과정 교수 △금융감독원·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약품안전관리원 전문위원 △질병관리청·대한간호협회·서울시간호사회·조산협회·보건교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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