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태우 전 대통령. ⓒ 연합뉴스
▲ 노태우 전 대통령. ⓒ 연합뉴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향년 89세로 26일 숨졌다.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온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1시 40분 생을 마감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이후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요양해왔다.

지병으로 희귀병인 소뇌 위축증과 천식까지 더해져 투병 생활을 하면서 공개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병마와 싸우던 고인은 우연의 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1932년 12월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은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 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노태우 대표(왼쪽)가 전두환 대통령과 손을 맞잡고 19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쿠데타 성공으로 신군부의 2인자로 떠오른 노 전 대통령은 정계에 입문해 군인이미지를 탈색하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하며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부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야권 후보 분열에 따른 '1노3김' 구도의 반사 이익을 보면서 같은 해 연말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직선 대통령에 선출된 뒤 민주주의 정착과 외교적 지위 향상, 토지공개념 도입 등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1987년 6월 민정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왔다.

특히 김대중 사면복권, 시국사범 석방 등을 담은 6·29 선언을 통해 신군부의 공포 이미지를 희석하고 '민주주의를 수용한 온건 군부' 이미지를 구축했다.

안으로는 국민통합, 밖으론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기치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성과를 내며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6년 12·12와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 연합뉴스
▲ 노태우·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6년 12·12와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 연합뉴스

그러나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원 규모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원을 선고받는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면을 장식했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지만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지난 2013년 9월에야 뒤늦게 완납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이 있다. 소영 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사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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