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이신 논설위원
▲ 정이신 논설위원

해체주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파괴, 풀어헤침의 행위적 관점이 강한 예술 사조, 포스트 구조주의의 문학 이론으로 1960년대에 프랑스의 철학자 데리다가 제창한 비평이론'이란 설명이 나옵니다.

저는 그들과 발음은 같지만, 추구하는 이유가 다른 해체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제가 사역하는 공동체의 운영지침으로 삼고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로 보면 미니멀리즘은 단순함을 미덕으로 삼기에,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인 본질만을 표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예술작품을 이렇게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의 괴리가 최소화되고, 진정한 리얼리즘이 달성된다고 봅니다.

21세기 들어 이런 사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이 패션 분야인데, 저는 교회도 이런 미니멀리즘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를 통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작은 교회와 소유건물이 없는 예배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후원해 주시는 목사님의 예배당을 빌려서 예배하고, 여기에서 무료 대안학교를 운영합니다. 별개로 따로 교회 건물을 임대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예배를 시작했고, 지금껏 이 방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국 고전 건축물의 특징은 해체되면 모든 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콘크리트와 철골로 만든 건축물은 해체된 후에도 자연으로 돌아가기 힘든 폐기물이 많이 생기지만, 고전 건축물은 해체하면 모든 게 자연으로 돌아가는 재료로 지어졌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건축물이 되는 교회를 꿈꾸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운영하는 학교와 교회가 해체되는 게 공동체의 최종 목표입니다'라고 말하면,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합니다. 마치 뭔가를 잘못 물어본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이게 뭐지'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나돗 교우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오해를 없애기 위해 처음 이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아나돗학교에는 북향민과 소외계층 청소년이 와서 공부합니다. 이런 학교가 해체된다는 건, 더는 이 땅에 북향민을 위한 대안학교가 운영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다.

또 소외계층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돈이 없어 마음껏 배우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유지될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북향민 초기 세대에 해당하는 사람이 북향민을 위한 대안학교를 반대하면서, 일반 학교에 북향민을 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대한민국 사람과 어울리는 게 낫고, 완충기로 대안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낯선 얼굴을 한 그 사람에게 들었던 말이 이제 이해가 됩니다.

북향민이 대한민국에 잘 정착해서 살고, 대안학교들이 운영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갖춰진 게 좋습니다. 이게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한국 학생에게도 버거운 대학입시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는 현실은 북향민과 소외계층 청소년이 감당하기에 녹록하지 않습니다.

또 이 땅에서 암약하는 사이비·이단들이 없어진다면, 우리가 기독교상담을 안 해도 됩니다. 저들에 대한 예방교육과 치유 상담이 원활하게 이뤄져 건강한 교우만 있다면, 우리처럼 작은 교회가 이런 일을 안 해도 됩니다. 아파트가 병원보다 많아야 좋듯이, 기독교상담 교회가 일반 교회보다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늘 우리를 현장으로 불러냅니다.

예수님 안에서 아름다운 해체를 위해 오늘도 길을 걷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이 필요 없게 된 날이 빨리 와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공동체가 아름답게 해체되는 걸 꿈꿉니다.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북향민이 월북을 시도했다는 뉴스가 없어져서, 이런 날이 빨리 오기를 오늘도 기도합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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