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타임즈 = 정이신 논설위원) 북한에 대한 전문가가 많지만, 저는 대안학교에서 북향민을 가르치면서 만난 사람이기에 그들과 다른 시각으로 북한을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런 상태에서 북한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합니다.

북한에도 X세대와 MZ세대가 있습니다. 그럴싸한 거짓말로 6·25한국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을 북한당국의 맹목적인 가르침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세대가 있습니다. 이들은 김일성과 그의 가문에 충성을 다짐한 빨치산 세대와 다른 성장 배경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자랐지만, 생각은 북한의 기득권층과 꽤 다릅니다.

한글학회에서 일제의 모진 핍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사전을 만든 이유는, 내선일체를 강조한 일본에 밀리지 않는 한글세대를 이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 세대란 이어지는 것이고, 우리말과 정신을 잊어버린 세대는 한국 사회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표지입니다. 그래서 일제의 모진 압박에도 한글학회는 이런 귀한 일을 했습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
▲ 정이신 논설위원

21세기 북한에도 이런 상징적인 일이 있습니다. 북한의 MZ세대는 우리나라의 MZ세대와 견주며 북한을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의 그 세대에서 '다음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의 모습을 봅니다. 김일성 일가의 다음 세대라면 별다른 희망이 없겠지만, 이들은 분명히 다른 세대입니다. 대한민국의 젊은이가 간직한 다른 세대이면서도 전통을 계승한 다음 세대의 모습이 북향민 MZ세대에는 안 보입니다.

그래서 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북한에서 김일성 일가가 독점한 권력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입니다. '북한이 언제까지 유지되고, 우리는 그런 북한과 공존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우리 다음 세대에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지'에 관한 생각이 북향민을 만나 이들을 가르친 후부터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한반도를 평화로 일통(一統)하는 이야기를 제 딸과 나누기 시작한 것도, 이게 제 삶의 과제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저만 한반도의 평화적 일통이 지닌 정당성을 이야기하고, 딸은 분단의 합리성을 말하는 상황이라면 제가 하는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왜 흡수통일이 사회문화적 분단 상황을 고착화하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큰지, 딸아이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러면서 딸아이가 쓴 에세이가 '수령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북한 여성의 인권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대를 이어 연속하는 게 좋습니다. 인간이란 이어져서 태어나고, 살아가다가 또 이어지며 죽습니다. 예수님도 성령님으로 인해 잉태됐지만, 10개월 동안 엄마인 마리아의 배 속에 있다가 유대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따라 유대인이 지켜야 했던 율법에 규정된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성령님으로 인해 잉태됐다고 해서, 10개월도 채우지도 않고 혹은 곧바로 엄마의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늘 이어지는 다음 세대를 기억해야 합니다. 단절된 다른 세대가 아니라 이어지는 다음 세대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지 늘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는 북한에 대한 통일투자와 통일선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우리 자식들이 부모세대에 버금가는 수준의 열정을 내지 않는 한반도의 평화적 일통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오랜 기간 차별받았던 곳이 북쪽 지역입니다. 이로 인해 북한에 살던 사람들은 천즉리(天則理)를 모토로 한 성리학을 넘어설 수 있는 우주적 사상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성리학을 넘어서야 조선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간절하게 성경과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평양에 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 신학교 출신들이 공산당의 압박을 피해 대한민국으로 왔고, 이승만 정부의 내각에서 주요 지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역사를 모르고 아이들을 가르치면 다음 세대가 아닌 단절된 다른 세대가 자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세대에게서는 한반도를 일통하는 희망을 찾기 힘들 것입니다.

■ 정이신 논설위원·목사 △한양대 전기공학과 졸업 △백석대 신학대학원 졸업 △아나돗학교 대표간사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세이프타임즈에 '노희(路戱)와 더불어 책(冊)놀이' 연재, 칼럼집 <아나돗편지(같이 비를 맞고 걸어야 평화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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