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회식과 남자 축구 중계 등에서 벌어진 그래픽과 자막 사고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MBC
▲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회식과 남자 축구 중계 등에서 벌어진 그래픽과 자막 사고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MBC

지난 7월 23일 MBC는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방송을 하면서 국가 소개 영상과 자막에 부적절한 사진과 표현을 사용했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이 등장할 때 체르노빌 원전 폭발 참사 사진을, 아이티 선수들이 들어올 때는 시위 사진과 함께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마샬제도는 '한때 미국의 핵실험장', 시리아를 '10년째 진행 중인 내전'이라 소개했다. 이외에도 각국의 국내 총생산(GDP)과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19) 백신 접종 비율 등 올림픽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보를 제시했다.

MBC의 이번 자료화면·자막은 해당 국가에 무례하기 그지없었다. 국내외의 거센 비판을 받는 것이 당연할 정도다. 떨어뜨릴 것도 없는 공영방송의 국내 신뢰도를 다시금 바닥으로 추락시키고, MBC는 전 세계의 국가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MBC는 뼈저리게 반성하는 한편 무례함을 반복적으로 생산해낸 내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MBC의 이번 사태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한 국가의 비극을 제3자의 입장에서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의 자료화면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참사, 아이티 시위, 시리아 내전 모두 막대한 인명 피해를 동반한 일이다. 축제의 시작에서 소개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슷한 사건을 겪은 일본이나 미국을 소개할 때는 초밥 사진이나 타임스퀘어 등의 사진을 넣었다.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경제 순위가 낮거나 약소국이라 판단하는 국가에 대한 우월의식이 담겨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MBC는 각국의 국내 총생산(GDP)과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비율을 제시했다. 올림픽과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다. 특히 코로나19 백신 접종 비율은 현재 백신 불평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백신 부스터 샷'이 논의되는 국가들이 있는 한편 공급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제작진은 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 백신 접종 비율을 소개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이라 예상하고 넣었는지 묻고 싶다.

▲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회식과 남자 축구 중계 등에서 벌어진 그래픽과 자막 사고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MBC
▲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회식과 남자 축구 중계 등에서 벌어진 그래픽과 자막 사고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MBC

이번 MBC 올림픽 중계는 재미도 센스도 예의도 없었다. 그러나 재미 이전에 고려되어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상태에서 재미를 추구하면 무례해진다. MBC는 노르웨이 선수단을 소개하면서 연어 사진을, 루마니아는 드라큘라 사진을, 이탈리아는 피자 사진을 송출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한국을 소개하면서 '김치' 사진만 내놓았다면 어땠을까? 한국의 오래된 역사에서 소개할 정보가 김치뿐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이다. 노르웨이, 루마니아, 이탈리아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테다.

MBC가 재미를 추구하려다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25일 도쿄올림픽 남자 축구 B조 루마니아 경기 당시 '고마워요 마린' 자막에서도 드러난다. 이 자막은 루마니아의 마린 선수가 전반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인터넷에서나 네티즌들이 우스갯소리로 쓸 법한 이 말이 중간광고에 나오자 한국 축구 팬들도 불편함을 드러냈다. 루마니아 축구협회도 공식 SNS를 통해 "한국 공영방송 MBC가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자막으로 마린의 부끄러운 순간을 조롱(mocked)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바로 이틀 전인 23일에 무례한 자료화면으로 비판을 받아놓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회식과 남자 축구 중계 등에서 벌어진 그래픽과 자막 사고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MBC
▲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회식과 남자 축구 중계 등에서 벌어진 그래픽과 자막 사고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MBC

MBC는 이번 사태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구체적인 개선책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실무진들이 일차적으로 자료화면을 수집하고, 선정된 자료 화면을 검수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문제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언론사로서 데스크의 기능을 상실한 무책임하고 무능한 변명일 뿐이다. 동일한 사고가 단기간에 반복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내부의 성찰과 반성은 진심으로 이뤄진 것인지, 당장의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면피용에 불과한 것인지 묻고 싶다. MBC는 지난 2월 조직 개편을 통해 스포츠국 인력을 줄이고 동일 업무를 MBC플러스로 이관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스포츠 전문 인력이 줄어들고 업무 분담 등의 문제로 인해 잡음이 있었던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이번 MBC 올림픽 중계사고는 예견된 사태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MBC는 26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잇따른 자료화면, 자막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박성제 MBC 사장은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하면서 "철저하게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도 파악하고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하겠다. 방송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 규정을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MBC는 케이맨 제도를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회피지로 유명'이라고 소개하고, 중앙아프리카 국가 차드에 대해선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무례한 자막으로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주의 조치)를 받았지만, 13년이 지난 현재 더 심각한 문제가 다시 발생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대로 바뀌지 않는다면 무례한 자료화면·자막 사용은 반복될 것이다. 앞으로 MBC는 한국 시청자뿐 아니라 물의를 일으킨 해당 국가 국민들에게 변화하는 모습과 구체적인 개선책을 보여줘야 한다. 어떻게 개선할지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MBC는 공영방송으로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 언론인권센터

▶ 세이프타임즈 후원안내 ☞ 1만원으로 '세이프가디언'이 되어 주세요 

저작권자 © 누구나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언론 세이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