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의 미술산책 <암산의 오후>

<암산의 오후> (엄혜자, 2015년 작품)

유년시절은 흙을 밟고, 자연과 함께 동화된 그런 시간들 이었다. 그래서일까? 자연은 늘 나에게 휴식을 주고, 쉼을 주는 영혼의 안식처다.

<암산의 오후>(엄혜자, 2015년 작품>. 바위에 새겨진 세월의 깊이를 보거나, 그 바위틈을 비집고 자라는 여린 풀들을 볼 때면 마음이 아리고 숙연해 진다. 장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갈라질지 언정 결코 무너짐이 없는 그 존재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일면을 스크린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우연히 만나 시선을 잡은 이 그림은 유독 유년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수소문 끝에 작가를 만나 '그 많은 소재 중 왜 바위인가'를  물었다.

엄혜자 작가는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자연의 섭리를 좇아 오랜 시간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단단함을 지킨 바위,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바위뿐만 아니라 그 위에 떨어지는 빛,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나무의 흔들림,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잡초, 세월을 유유히 흐르는 물, 삶을 포효하는 듯한 폭포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바위의 거친 표면을 붓과 나이프로 으깨고, 섞으면서 치열하게 뒤엉킨 삶을 색채로 표현했다. 혹한 현실에 숨죽인 우리들의 자아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작가는 자연의 섭리임을 인정하며 그 속에서 '쉼'을 선물하고자 했다.

<암산의 오후>를 통해 자연의 쉼을 선물 받고 누군가에겐 희망, 또 누군가에겐 즐거움과 위로가 되길 바란다. 비록 갈라진 바위틈처럼 거친 찬바람을 맞고 있는 이에겐 버텨야 하는 요소들이 많으니 힘내시라고 소리 질러 주고 싶다. 원치 않는 잡초가 나는 사람들을 보면 뽑지 않고 두더라도 나름 조화를 이룰 수 있으니, 시간의 현명함을 기다리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부서짐으로 위태해 보이는 바위처럼 '건강의 벼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음에 감사하고, 간절한 삶을 살자고 용기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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