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이슈분석 <27>

'Morning Roll Call.' 미국 소방대원의 아침 근무교대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은 주별로 다양성이 인정돼 교대방식의 내용과 형식에 다소 차이가 있다. 방화복을 입고 도열하기도 하고 간편한 근무복 차림으로 농담을 건네며 하루를 여는 곳도 있다. 공통점은 소방관의 하루를 결정짓는 중요한 의식처럼 치러진다는 점이다.

이 시간은 인원파악, 소방대원 컨디션, 소방차 인원배치, 업무인수인계, 지시사항 전달, 훈련계획, 새로운 장비 소개와 개인보호장구(PPE) 점검 등으로 채워진다. 10분 내외에서 근무교대를 신속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깊이 있는 논의와 필요한 교육은 일과 중 훈련시간을 활용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자율적으로 하는 '안전브리핑(Safety Briefing)'.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쌍방향 소통을 통해 소방의 역할과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안전브리핑은 정형화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방관 스스로 그날의 상황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을 발표한다. 제시된 안건은 참석한 소방관 모두에게 경각심을 줘 사고를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인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지난달 서울지역의 한 소방서 근무교대 시간. 무더운 날씨에 헬멧과 공기호흡기를 착용한 소방관이 소방차 앞에 도열했다. 도로변에서 '안전'이란 구호까지 외치는 모습은 되레 출근길 시민들을 부담스럽게 했다. 이런 방식을 두고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과 쾌적한 근무여건은 무시한 채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한, 그리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면하기 위한 '졸속행정'이라는 의견이 상존한다.

신임 소방관은 여러 방면에서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반복훈련을 해야 한다. 근무교대는 중요한 학습의 장이 되기에 소홀히 넘길 수 없다. 미국 또한 근무교대 시간에 신임 소방관에게 방화복 착용훈련을 하거나 이론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 모든 것이 철저하게 본인의 책임이다. 미국 소방관이 사용하는 말 중에 '아이를 돌본다'는 의미의 'Babysitting'이 자주 사용된다.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할 만한 사람들까지 일일이 챙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역할과 임무에 소홀한 사람들에게는 엄격한 제제가 기다리고 있으니, 모든 것이 자유스럽게만 보이는 미국이 '방종'하지 않고 기본과 원칙이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다.

임용 후 1년이 지나면 더 이상 신임 소방관이 아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고, 또 잘 알아야만 한다.

모든 것을 감시하고 지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소방관에게 왜 우리가 이 일을 하는지, 의미를 되새기며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임무주도형' 소방관을 만들어 가는 정책이 절실하다.

우리 소방정책은 소방관 개개인의 경력, 전문성, 지식을 고려치 않고 획일적으로 몰아 붙이고 있다. 1년차나 20년차 소방관 모두 제복공무원이라는 틀에 묶어 소방차 앞에 줄지어 세운다. 근무교대와 같이 소방관의 하루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간이 단지 누군가가 지켜보는 것이 부담돼 형식에 치우칠 우려가 높은 대목이다.

'시민들이 존경하는 직업 1위'라는 타이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소방관 스스로 '다시 태어나도 하고 싶은 직업 1위'가 될 수 있도록 전문성을 인정, 스스로 강한 소방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방관의 근무교대 시간을 관광객을 위한 수문장 교대의식 쯤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건 세이프타임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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