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친근"
"우리 삶은 사랑의 순례자입니다"

▲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해인글방에서 박경규 논설위원이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 부산 광안리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해인글방에서 박경규 논설위원이 이해인(클라우디아) 수녀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세이프타임즈

1일 부산 광안리 금련산 아래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 들어서자 뜰 안의 벚꽃나무에 맺힌 작은 꽃망울이 반겼다.

해인글방에 들어서자 수녀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찾아 뵌 지 벌써 수년이 흘렀다. 눈가에 흐르는 잔잔한 미소는 예나 변함이 없다.

해인글방에 가득 찬 책이며, 그림과 사진들이 서재를 가득 메우고 있다. 미리 준비해 두신 최근 출간한 '이해인의 시와 영성의 시학', '이해인의 말' 등 여러 권의 시집을 소개해 주신다.

지인이 보내주셨다는 쑥차를 마시며 말씀을 들어본다.


3월의 바람

필까 말까
아직도 망설이는
꽃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열까 말까
망설이며
굳게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싶어
바람이 부네

쌀쌀하고도
어여쁜 3월의 바람
바람과 함께
나도 다시 일어서야지
앞으로 나아가야지

(이해인 시집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중에서)


▲ 2012년 국내 첫 연가곡집 음반으로 발매한 '연가곡집 편지' (이해인 수녀 시, 박경규 작곡, 신나라발매) CD자켓(왼쪽). 발매 당시 교보음반코너에서 비가요부문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음반발매직후, KBS아침마당에 처음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수녀회 규정으로 라디오방송은 출연허용됐지만 TV출연은 금기였기 때문이다(오른쪽). ⓒ 세이프타임즈
▲ 2012년 국내 첫 연가곡집 음반으로 발매한 '연가곡집 편지' (이해인 수녀 시, 박경규 작곡, 신나라발매) CD자켓(왼쪽). 발매 당시 교보음반코너에서 비가요부문에서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음반발매직후, KBS아침마당에 처음으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수녀회 규정으로 라디오방송은 출연허용됐지만 TV출연은 금기였기 때문이다(오른쪽). ⓒ 세이프타임즈

- 코로나 환경에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환경입니다. 갇혀 살아야 하니 때론 답답하고 힘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는 너무 바쁘게만 살아 왔잖아요. 나를 돌아다 보는 시간을 갖는 것, 좀 더 나를 안으로 깊이 들여다보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도 자세히 보게 하는 계기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곳 수녀원은 넓고 커 보이는데 수녀님께서 첫 입회하신 곳이지요

"스무살인 64년에 이곳 수녀회에 첫 입회했으니 벌써 57년째네요. 첫 서원은 68년도에 했고, 이곳 수녀원 본원에만 하더라도 지금 130명의 수녀님들이 계신답니다. 전체는 500여명이나 되지요. 매일 기억해야 할 일들이 많아요. 늘, 어떻게 그 분들과도 교감할까도 고민합니다.

나름 유명 수녀님과 함께하는 데 수녀님들의 영명축일이나 생일 등 손 편지라도 적어 서로 위안의 시간들이 갖는 일도 필요하기도 하고 항상 함께 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답니다."

-여기 해인글방은 여러 가지 감회가 서려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는 글방이지만 저의 삶에 지침이 되는 글을 스스로 써 놓고 실천하기도 하구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보내 주시는 온갖 사연들이 다 모여 있기도 하지요. 법정스님이 보내주신 '날마다 새롭게 살자'라고 써 주신 글에서부터 많은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보내주신 글과 그림, 사진, 편지 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요즘은 한방 가득 차 있는 독자들의 편지를 정리하고 있답니다. 정리할 때도 되었구요. 특히 그중에는 중형을 받은 재소자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아픔을 가진 많은 소외계층의 분들이 보내온 편지들도 많은데 이제 좀 정리하고 있습니다."

- 어떤 내용의 편지가 많은지요.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소개해 주실까요

"다양한 글들이 있지만 뜻밖에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신을 못 받아들이고 죽고 싶다는 말을 예사로 하며 당장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사람들도 있답니다.

편지도 보내오지만 실제로 찾아오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일일이 딱 맞는 기도를 해주거나 래시피를 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지요.

어떨 때에는 조개껍데기에 성경말씀을 적어서 그 분들에게 하나씩 뽑으라고 하면 시무룩해 하다가도 그 속에 적힌 종이를 펼쳐 읽으며 희망의 메시지를 보듯 해석을 요청하기도 하지요. 마치 하느님의 메시지로 알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다행스럽게 여긴답니다."

- 수녀님 건강을 걱정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몸도 아프고 하지요. 지금은 큰 어려움은 없지만 양쪽 다리 모두에 인공관절을 해 넣었고 또 암 환자로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으니 늘 합병증 두려움도 조금 있고, 건강 염려증도 있지만 늘 감사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건강을 염려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사실 필자가 수녀님과 첫 만남은 37년 전이다. 1984년 여의도 KBS에서 PD와 연사로 처음 만나 필자가 그녀에게 연가곡집을 제안했다.

클래식음악 전문 프로듀서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뮐러 시)'나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하이네 시)'과 같은 연가곡집을 늘 방송하면서 우리 버전으로 된 연가곡집을 만들었으면 하던 차에 시인에게 그 제안을 했던 것이다.

흔쾌히 응하였던 수녀시인은 그 후 일주일 만에 원고지에 적은 18편의 '가을편지'라는 제목의 시를 보내 주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당시에 18편의 연작시에 가곡을 작곡하지 못하고, 28여년을 지난 2012년 4월 긴 시간을 고이 간직해 왔던 원고지에 적힌 18편의 시를 서랍에서 꺼내 더 이상 미루지 않아야겠다는 작심 아래 45일 동안 18곡을 순서대로 작곡했다.

이런 마음으로 작곡을 작심하게 된 배경은 그 무렵 수녀님은 대장암 선고를 받고 향암 치료를 하고 쾌유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였다.

꼭 생전에 육성을 담은 연가곡집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해 가을 18곡은 바리톤 송기창씨와 피아니스트 이성하씨의 반주로 녹음을 마쳤다.

18편 가운데 제3곡과 제7곡은 수녀님의 육성과 노랫말을 사용한 시낭송을 담았다. 

당시 육성 시낭송 녹음은 이곳 수녀회에 내려와 녹음했다. 수도회 내에 조용한 장소를 찾기 위해 기도방과 성당에서도 녹음을 시도했지만 외부소음이 마이크를 타고 들어와 어쩔 수 없이 근처 KBS 부산방송을 찾아가 빈 스튜디오를 빌려 녹음했다. 

이곳 수녀회의 방문은 그때 방문하고 두 번째이다. 사실은 지금 코로나로 수녀원을 직접 방문해 인터뷰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어쩌면 이러한 인연으로 수녀님과의 인터뷰가 이뤄진 것인지도 모른다. 건강하게 지금까지 살아주셔서 내심 깊이 감사드렸다. 수녀님과 면담을 하는 동안 농담반 진담반으로 수녀원으로부터 혼(?)나기 전에 빨리 마치자고 했다.


▲ 최근 출간한 '이해인의 시와 영성의 시학'(박종덕 저, 생각의 다리 발행)과 '이해인의 말'(안희경 인터뷰, 마음산책 발행, 위)과 다양한 독자들이 보내준 편지와 사진, 그림 ,액자들로 가득 차 있는 글방내부(아래) ⓒ 세이프타임즈
▲ 최근 출간한 '이해인의 시와 영성의 시학'(박종덕 저, 생각의 다리 발행)과 '이해인의 말'(안희경 인터뷰, 마음산책 발행, 위)과 다양한 독자들이 보내준 편지와 사진, 그림 ,액자들로 가득 차 있는 글방내부(아래) ⓒ 세이프타임즈

- 수도생활 50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57년이나 되었는데 가장 어렵고 힘든 점이 있다면요

"수녀는 화장도 안하고 장신구도 하지 않고 늘 똑 같은 회색 옷만 입지요. 때론 우리 수도회의 정복인 흰색이나 검정색도 입지만 회색은 수도회의 작업복이랍니다. 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해요. 우리는 일생을 검박하게 살고자 종신서원을 한 사람들이잖아요.

수녀회의 규칙도 기도하고, 읽고, 일하며 하느님을 섬기는 가르침인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늘 지키려고 노력을 하지요. 수도회는 순명, 겸손, 사랑의 영성이거든요.

또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일이 중요한데 수도자로서 시를 쓴다는 것도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절대자에 대한 순명과 겸손, 사랑을 바탕으로 수도자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소박한 행복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 힘들 때, 위안이 될 수녀님의 말씀을 듣고 파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을 하신다면

"늘 하는 말이지만 세상 어디엔가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는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랍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끝이 있는 법이니 너무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힘이 들 땐, 좀 을씨년스럽기는 하지만 내가 죽어 관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용서가 안 되는 일이 없지 않을까요.

내가 내일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뭐 거창하게 신앙을 갖다 붙일 필요도 없구요. 사랑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내 안에 사랑이 출렁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의미가 사라지고 말지요. 우리의 삶은 사랑의 순례자이기도 하니까요"


이해인 수녀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녀의 시에는 절대자의 부르심에 대한 순명과 수도자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소박한 행복과 절대자를 지향하는 순정한 신심의 고백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박종덕 저, '이해인의 시와 영성의 시학'에서).

▲ 박경규 논설위원(의공학박사·작곡가)
▲ 박경규 논설위원(의공학박사·작곡가)

그녀의 시가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허위허식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현실에 주목하고 절대자에 대한 순명과 사랑을 노래하지만 종교적인 신앙의 위압감을 강요하지 않은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시를 사랑하고 시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 베스트셀러 작가이니까 사람들은 저작료를 많이 받는다고 여긴다.

저작료나 인세는 개인통장으로 입금되지만 직접 통장을 본적도 없으며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도자는 공동 재산이다. 가끔 기차를 타고 출장을 가더라도 교통비를 청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좋아졌단다. 1년 휴가비도 30만원이 나오고, 여행을 가면 교통비는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단다. (마음산책 발행 '이해인의 말' 중에서)

오랜만에 수녀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며 "이제 정리 할 때가 되었다"라는 말씀에 내심 숙연해짐을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들레 영토(1976), 내 혼에 불을 놓아(1979),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1983), 작은 기쁨(2007) 등 순결과 맑은 정서적 가치를 담은 투쟁과 갈등이 아닌 화합과 사랑, 평화 그리고 감사와 겸손, 행복을 담은 그녀의 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향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영성의 미학이 스며들어 있는 연가곡집 '편지' 18편의 노래로 전국 성당을 순회하며 공연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인생을 잘 사는 일은 삶의 의미를 지닌 사랑의 순례자라는 말을 화두로 삼고 살아야하지 않을까도...

■ 박경규 논설위원·의공학박사 △작곡가 △KBS 프로듀서 △KBS 몬트리올 PD Correspondent △국악방송본부장 △국회환경포럼 정책자문위원 △대불대·동아방송대 교수 △한국음악치료교육학회 이사 △한국예술가곡연합 명예회장 △자랑스런 대한국민대상 수상 △문화관광부 저작권심의위원 △서울시청소년미디어센터 관장 △CLI바이오소닉 CEO △시와음악포럼 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이사 △한국가곡방송 이사장 △가나에듀아카데미 원장 ◆저서 △건강과 음악치료 △명곡과 나 △쾌청 365 △음악클리닉 △안개꽃(작곡1집) △동강은 흐르는데(작곡2집) △연가곡집 편지(작곡3집) △가곡 대관령 등 300여곡 ⓒ 세이프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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