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궐에서 목욕은 어떻게 했을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목욕은 위생보다는 '목욕재계(沐浴齋戒)'와 같은 기도나 의례를 위한 목욕으로 많이 언급되고 있다. 치료목적으로 목욕보다는 온천이 더 많이 언급됐다. 단순한 세신(洗身) 목적이 아닌 듯 하다.

국립고궁박물관이 엮은 '조선의 역사를 지켜 온 왕실여성'을 보면 조선시대 궁궐에 왕자가 태어나면 3일째 되는 날 길시에 첫 목욕 시켰다고 한다. 목욕수는 매화, 복숭아, 오얏나무 뿌리, 호두를 넣어 끓인 물에 멧돼지 쓸개즙을 섞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매화는 추운 겨울을 견디는 대표적인 꽃으로 굳센 의지를 나타낸다. 복숭아는 예로부터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가지는 귀신을 쫒아낸다'는 속설이 있다. 오얏나무는 이(李)씨 조선의 상징으로 나뭇잎과 뿌리를 끊인 물로 목욕하면 땀띠가 없어지는 등의 피부질환에 효과가 있다. 호두 기름은 두뇌건강과 혈액순환 등에 효과가 높은 대표적인 견과류다.

돼지쓸개는 예로부터 '저황'으로 웅담을 대체할 때 사용했다. 쓸개즙은 살균, 염증제거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목욕수 하나만 보더라도 왕에 대한 선조들의 정성과 더불어 철저한 위생관념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궁궐에는 별도의 목욕시설이 없었다. 왕실은 침실 옆에 붙어 있는 작은 방이 왕이 목욕하는 장소다. 평소 세수를 하는 방이지만 목욕을 할때는 바닥에 기름종이를 깔고 큰 목욕통(목간통)을 가져다 놓는다. 이 목욕통은 몸을 완전히 담글 수 있는 크기로 수백년 된 큰 통나무를 파서 만든다. 목욕통은 향이 좋은 소나무나 향나무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왕이 목욕시 세숫간 상궁과 하인이 따뜻한 물과 찬물을 적절히 배합해 목욕통에 목욕수를 준비한다. 목욕준비가 끝나면 시녀상궁이 부드러운 무명수건과 왕이 갈아입을 내복과 의대를 가져다 놓고 나간다. 왕은 혼자서 목욕을 하지 않고, 유모격인 봉보부인이 목욕을 시켜주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왕이 어느 정도로 목욕을 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다. 당시의 뿌리 깊은 유교사상으로 볼때 옷을 벗고 몸을 씻는 등의 내용을 실록 등에 언급하기에는 많이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왕비도 유모와 시녀가 목욕시중을 들었다. 조선시대 대가집 규수들은 옷을 완전히 벗지 않고 엷은 비단무명천으로 온몸을 감싸고 목욕통에 들어가 목욕했다. 궁궐의 왕비도 마찬가지로 목욕할 때는 옷을 벗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궁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은 별도의 목욕시설이 없다보니 늦은 저녁시간에 부엌 등에 목욕통을 가져다 놓고 문을 걸어 잠그고 몸을 씻었다고 한다.

왕과 왕비가 목욕하는 장면 . TV 드라마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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